뒤늦은 낙관론, 또다른 위기 불러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작년 이맘때만 하더라도 중국 증시가 강하게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던 국내 예측기관과 금융회사는 거의 없었다. 금융위기 이후 중국 투자로 깊은 상처를 입었던 국내 투자자들도 “차이나 상품은 다시 쳐다보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다짐해 왔던 터라 중국 주가가 올라갈 것이라는 예측이 나와도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지난 1년 동안 중국 주가가 두 배 넘게 올랐지만 확실한 추세를 읽어내지 못한 데는 각종 예측 때 흔히 범하는 일곱 가지 함정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 월가에서는 ‘루비니-파버의 7대 예측 함정’이라고 꼬집는 사람도 있다. 비관론에 젖어 큰 주식투자 기회를 잃게 한 것을 비꼬는 용어이긴 하지만 각종 지수나 상품값을 예측하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교훈을 준다.
첫째, 가장 흔하게 범하는 것은 ‘트렌드 분석에 따른 예측 함정’이다. 현시점에서 주도 트렌드를 찾고 그 연장선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현재 상황이 미래까지 지속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트렌드 ?영향력, 방향성, 패턴이 바뀔 수 있음을 간과하는 오류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미래 예측을 사회 전반에 나타나는 메가트렌드에만 맞출 경우 이 흐름에 부합하지 않거나 불확실해 무시했던 변수가 현실화하면서 1년도 못 가 틀리는 경우가 많다. 미래 트렌드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현재 트렌드에만 맞춰 예측할 때 범하는 오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1년 전 중국 경제성장률이 7%대로 추락하는 여건에서 주가가 오를 것이라고 예상하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 ‘심리적 편향에 따른 예측 함정’이다. 예측자의 오랜 경험과 지식이 독특한 심리적 편향을 유발시켜 예측 모델을 잘못 설정하거나 자료를 편향적으로 선택하게 한다. 심리적 편향은 미래예측 과정의 모델구성뿐만 아니라 이용자로 하여금 올바른 예측을 잘못 해석하게 한다. 한마디로 미래 예측을 빗나가게 하는 심리적 함정으로, 중국과 같은 신흥국 증시 예측 때 가장 쉽게 범하는 오류다.
셋째, ‘고정관념의 함정’이다. 과거 경험과 기존 예측 등이 고정관념으로 작용해 미래를 예측할 때 새로운 정보나 변화, 방향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 나타난다. 금융위기 이후 중국 관련 상품으로 큰 손해를 봤으니 앞으로 중국 투자는 매력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차이나 트라우마’가 대표적인 사례다.
넷째. ‘자기 과신의 함정’이다. 자신의 예측, 실행, 판단능력을 과신한 결과 잘못된 미래 예측에 빠지는 것으로 신흥국 증시를 전망할 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과신에 빠진 예측자는 자신의 정보량을 과대평가해 새로운 정보에 소홀해지거나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1년 전 대부분 중국 증시 전문가는 이 오류에 빠져 있었다.
다섯째, ‘신중함의 함정’이다. 예측자가 틀릴 것을 우려해 지나치게 신중을 기하면 자신의 실제 예상보다 보수적이거나 수요자의 생각에 부응하는 예측을 내놓는 경향이 높다. 애널리스트들은 강세장에서 약세를 외치기가 힘든데 이는 예측이 빗나갈 경우 많은 비난에 시달리며 심각한 후회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이미 큰 손실을 초래한 국내 금융회사가 1년 전 중국 투자를 다시 권유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여섯째, ‘증거 확인의 함정’이다. 미래를 예측할 때 자료수집과 해석과정에서 자신의 원래 가설에 부합하는 증거들만 채택하는 성향에 따라 미래예측이 편향된 방향으로 흐르기 쉽다. 중국 증시를 예측할 때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미래 방향성에 대한 가설을 먼저 설정하고 그 답을 찾는 경향이 있다. 이 과정에서 선호 성향이 작동해 자신이 설정한 가설이 틀렸어도 자기 생각을 지지하는 정보에 더 끌린다.
일곱째, ‘기억력의 함정’이다. 과거 경험했던 재해나 극적인 사건을 지나치게 염두에 두고 미래를 전망한 결과 예측이 비관적, 보수적으로 편향되게 흐르는 현상이다. 1년 전 중국 경기에 대해 단기적으로 ‘경착륙’, 중장기적으로는 ‘중진국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봤던 것도 이 오류 때문이다.
1년여 동안 거침없이 상승해온 중국 증시가 주춤하면서 또다시 전환점을 맞을 분위기다. 하지만 국내 투자자들은 뒤늦게 중국 투자 ?열을 올리고, 일부 증권사는 이런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앞으로 중국 증시 예측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비관론의 오류’ 뒤에 나오는 ‘낙관론의 위기’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미국의 경기 예측학자 웨슬리 미첼은 “그릇된 비관론이 위기에 봉착하면 순식간에 사라지고, 이 과정에서 그릇된 낙관론이 태어난다”며 “새로 탄생한 오류는 신생아가 아니라 거인의 위력을 발휘하는데, 특히 기회를 놓친 투자자는 낙관론에 영합하면서 흥분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요즘 중국 증시에 대한 국내 투자자들의 심정을 잘 대변해 주는 경고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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