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장면과 훈련·전투신 교차해 긴장감 높여
정치 이념에 희생된 국군장병의 조국애 극적 묘사
[ 유재혁 기자 ]
2002년 한국이 월드컵 4강 신화를 작성하던 날, 그라운드의 젊은 영웅들은 온 국민의 환호를 받았다. 하지만 서해 연평해전에서 목숨을 던진 또 다른 젊은 영웅들은 국민의 뇌리에서 잊히고 있다. 오는 10일 개봉하는 김학순 감독의 ‘연평해전’은 그날 산화한 구국(救國)의 영웅들을 불러온다. 표현 방식은 다소 투박하지만 진정성과 현실성을 오롯이 전달한다. 해군 전우들의 뜨거운 조국애와 따스한 전우애를 펼쳐놓는다. 그들을 한꺼번에 집어삼킨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하고 우리 군인의 생명을 지켜내지 못한 위정자들의 안이함과 무능도 질타한다.
서강대 영상학과 교수인 김 감독은 이 영화를 기획한 뒤 크라우드펀딩으로 자금을 조달하면서 촬영에 착수했다. 이후 여론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기업은행과 영화배급사 NEW가 투자자로 참여해 재촬영을 통해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총제작비는 80억원. 해군과 국방부 등이 함정 등을 대거 지원했다.
영화는 교전 중 중상을 입은 의무병 박동혁 상병(이현우 분)을 헬기에 태우고 전장을 빠져나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헬기에서 함정을 내려다보는 이 장면에서 “우리 모두는 살고 싶었다”는 박 상병의 내레이션이 깔린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과거로 돌아가 참수리 357호 고속정에 승선했던 27명의 장교와 사병들의 사연을 들춰낸다. 부하들에게 엄격한 군율로 대하면서도 내심 따스한 정을 주는 윤영하 대위(김무열 분), 한 여자의 든든한 남편이면서 부하들을 동생처럼 아끼는 한상국 하사(진구 분), 말 못하는 어머니에게 위로의 편지를 쓰는 효자 박 상병 등은 고된 훈련 속에 서로를 의지하며 가족처럼 가까워진다.
바깥 세상에서 온 국민이 월드컵을 응원하는 실제 장면을 교차시키면서 훈련의 긴장감은 더욱 고조된다. 마침내 서해에서 북한군이 참수리 조타실에 포탄을 퍼붓는다. 의무병의 눈으로 지켜본 전장은 지옥도다. 적의 포탄에 팔다리가 잘려나가고, 잘린 손가락을 주워 주머니에 집어넣기도 한다.
리얼리티가 뛰어나다. 고속정을 비롯해 세트, 의상, 분장까지 해군의 모습을 실감나게 재현했다. 해상 전투신도 박진감이 넘친다. 집어삼킬 듯한 파도, 쏟아지는 총탄과 포탄은 관객을 아비규환의 한복판으로 데려간다.
무엇보다 영화는 정치인의 안이한 자세를 민초의 희생과 대비하며 통렬히 고발한다. 북한군이 선제 공격을 해올 것이란 암호를 해독했지만 정권은 아군이 선제 사격을 못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장병의 목숨보다 남북 간 화해를 강조하는 정치적 이념이 더욱 소중했다. 정부는 교전이 일어난 해 璨【?아군의 즉각 철수를 명했다. 나라에 전쟁이 일어났는데도 대통령은 그날 월드컵 결승전을 보러 2박3일 일정으로 일본으로 향했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다친 뒤에야 아군의 목숨을 지킬 수 있도록 교전수칙을 변경했다. 그러나 희생자들을 되살릴 수는 없다. ‘연평해전’은 우리 영화계에서 오랫동안 잊힌 국방과 안보의 소중함을 길어올린다. 박진감 넘치는 전투 장면, 눈물 어린 희생과 감동은 덤이다.
유재혁 대중문화 전문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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