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 중심으로 산업 재편…구글·애플·아마존 등 SW기업
씨티·AIG 등 밀어내고 '톱10'…산업규모, 하드웨어 이미 추월
하드웨어 강자도 변신 박차…차량 구동·핀테크 등 영역 확대
IoT '플랫폼 전쟁' 승패 좌우…삼성·IBM·HP 등 SW 강화
[ 전설리 기자 ]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먹어치울 것이다(Software is eating the world).” 웹브라우저 넷스케이프 창업자 마크 앤드리슨은 4년 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를 통해 이렇게 내다봤다. 예견은 적중했다. 대부분의 주요 산업이 소프트웨어업체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생존하기조차 힘든 시대가 왔다.
세계 최대 서점은 아마존이다. 세계 최대 비디오 대여사업자(가입자 수 기준)는 넷플릭스다. 두 회사 모두 소프트웨어업체다. 이들이 시장을 장악하자 미국 서점 보더스, 비디오체인 블록버스트는 몰락했다.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으로 이스트먼코닥도 비슷한 운명을 겪었다. 앤드리슨은 “더 많은 산업 영역이 소프트웨어로 인해 붕괴하거나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재편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서둘러 소프트웨어업체로 변신하지 않으면 기업은 몰락하고 일자리는 갈수록 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소프트웨어로 달리는 자동차
“이제 자동차는 기름이 아니라 소프트웨어로 달린다.” 디터 체체 메르세데스벤츠 회장(다임러AG 이사회 의장)은 작년 초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CES에서 이렇게 말했다. 핀테크(금융+기술) 시대엔 은행 증권사가 소프트웨어 기업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미 대부분의 증권 거래가 소프트웨어 기반의 트레이딩 서비스로 이뤄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흥행한 3차원 영화 아바타를 제작하는 데 3만6000대의 컴퓨터가 쓰였다.
자동차 개발 원가의 절반 이상인 52.4%가 차량 전자제어 장치 등 소프트웨어와 관련한 것이다. 자동차 한 대를 개발하는 데 약 3000억원이 들었다면 이 중 1500억원 이상을 소프트웨어 개발에 투입한다. 가전제품 개발 원가의 53.7%도 소프트웨어 비용이다. 사물인터넷(IoT) 기술과 함께 스마트홈이 진화할수록 이 비중은 훨씬 더 높아질 전망이다.
소프트웨어산업 규모는 이미 하드웨어산업을 추월했다. 미래창조과학부에 따르면 2000년만 해도 세계 정보기술(IT)시장에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36%, 28%였다. 그러나 이 비중은 2002년 역전했다. 2013년엔 21%, 32%로 격차가 벌어졌다. 앞으로 이 격차는 더욱 확대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세계 기업 판도도 변했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세계 1~10위 기업엔 씨티그룹 AIG HSBC그룹 JP모간체이스 등 금융업체가 이름을 올렸다. 현재 그 자리는 애플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소프트웨어업체가 차지했다.
플랫폼 전쟁의 핵심 경쟁력
삼성전자 LG전자 애플 구글 등은 최근 다가올 IoT 시대에 플랫폼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12일 IoT 개발 플랫폼 ‘아틱’을 발표했다. 구글도 같은 달 28일 IoT용 운영체제(OS) ‘브릴로’를 선보였다. 애플은 다음주께 스마트홈 플랫폼 ‘홈’을 발표할 예정이다.
플랫폼 전쟁에서 누가 승자가 될지도 소프트웨어 경쟁력에서 판가름난다. 플랫폼을 장악하려면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플랫폼을 만들고 작동시키는 것이 소프트웨어기 때문이다.
모든 사물이 연결되는 IoT 시대엔 소프트웨어 역량이 더욱 중요하다. IoT 시대엔 산업 간 융합이 급속히 진행된다. 연결과 융합의 열쇠가 소프트웨어다. 융합이 확산할수록 소프트웨어 적용 범위도 넓어질 수밖에 없다.
국방산업을 예로 들어보자. 현대 전쟁은 소프트웨어가 한다. 전투기가 전투를 할 때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는 비중이 크게 높아졌다. 1960년 개발된 F4 기종의 전투 기능 중 소프트웨어 담당 비중은 8%에 그쳤다. 그러나 1982년 개발된 F16 기종에선 이 비중이 45%로 높아졌다. 최근 실전 배치를 준비하고 있는 F35 기종은 90%다. 거의 모든 전투 기능을 소프트웨어가 구동한다.
하드웨어 강자도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하드웨어 중심의 정보통신기술(ICT)산업은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전통적인 하드웨어 강자 IBM 휴렛팩커드(HP) 등도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하드웨어 경쟁력만으론 살아남기 어렵다고 판단해서다. PC 서버 등 분야의 강자였던 이들은 최근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소프트웨어업체로 탈바꿈 중이다.
국내 삼성전자와 SK텔레콤 등 ICT업체들도 소프트웨어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소프트웨어업체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2012년 미국 소프트웨어업체 엠스팟과 엔벨로를 인수했다. 작년엔 캐나다 모바일 클라우드업체 프린터온을, 올해 들어선 미국 모바일 결제업체 루프페이를 샀다. 소프트웨어 인재 확보를 위해 2011년 하반기 신입사원 공채부터 소프트웨어 직군을 별도로 선발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연구개발(R&D) 인력을 기존 네트워크(망) 중심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재편하고 있다. 윤용철 SK텔레콤 PR실장은 “종합기술원의 소프트웨어분야 연구원 수가 최근 3년간 169% 증가했다”며 “이 중 박사학위를 가진 고급인력만 약 30%에 이른다”고 말했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
특별취재팀 김태훈 IT과학부 차장(팀장), 임근호(국제부), 오형주(지식사회부), 전설리·안정락·이호기·박병종·추가영(IT과학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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