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전쟁 막바지, 초나라의 왕 항우의 마지막을 지킨 건 ‘오추마’였다. 해하전투에서 사면초가에 몰린 항우는 ‘오추마가 달리지 않으니 어찌하란 말인가’고 탄식했다. 오추마는 검은 바탕에 흰털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적토마(赤兎馬)는 《삼국지》에서 여포가 타던 말이다. 색깔이 타는 불꽃과 같아 적토마로 불렸다. 여포를 죽인 조조가 관우의 마음을 잡으려 적토마를 선물로 내놓자 관우가 ‘형님(유비)에게 빨리 가는 데 도움이 되겠다’며 덥석 받자 조조가 서운해하는 대목이 유명하다.
말은 빨리 달리고 지구력과 충성심이 강해 특히 전쟁터에서 쓰임새가 많았다.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몽골의 전투력도 말이 근간이었다. 요동과 함경도 지방에서 활동하며 여진족과 가까웠던 조선 태조 이성계는 특히 말을 아꼈다. 평생 같이 다닌 말을 ‘팔준마’라고 불렀다. 세종 때 안견이 이 말들을 한 마리씩 그린 ‘팔준도첩’이 전할 정도다.
말은 20세기까지도 전쟁에 동원됐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워호스(War Horse)’는 1차 세계대전 때 군마로 징집된 말 ‘조이’와 소년 마주 ?우정을 그린 감동적인 영화다. 조이는 총알이 오면 고개를 숙이고 철조망도 잘 뛰어넘는 영리한 말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으로 더 어울릴 만한 명마가 한국에 있었다. 1952년 미군 소속으로 전장에 투입돼 군마로 활동했던 ‘아침해’다. 아침해는 원래 당시 신설동 경마장을 달리던 경주마였다. 마주였던 소년 김흑문은 누이가 지뢰를 밟아 장애인이 되자 이 말을 250달러를 받고 미군에 팔았다. 아침해는 수백 차례 탄약과 보급품을 날랐고 단독 작전도 50회 이상 수행했다. 미군들은 아침해를 ‘레크리스(reckless·무모한)’라고 불렀다. 아침해는 1960년 하사 계급으로 미국에서 은퇴했고 훈장도 받았다.
말은 이제 전쟁터가 아니라 스포츠산업에서 각광을 받는다. 최근 미국 경마계에선 오랜만에 ‘트리플 크라운(triple crown)’이 탄생해 화제가 됐다. 켄터키 더비, 프리크니스 스테이크스, 벨몬트 스테이크스 등 3대 메이저 대회를 석권하는 것을 뜻하는데 엊그제 경주마 ‘파로아’가 벨몬트 스테이크스에서 우승하며 ‘삼관마’가 됐다. 1978년 ‘어펌드’ 이후 37년 만에, 역대 미국 경마에서 12번째다.
전설 속의 명마들은 자식을 제대로 못 남겼다. 그러나 삼관마는 사람들이 나서서 관리한다. ‘챔피언 말의 정액 1㏄가 다이아몬드 1캐럿’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을 정도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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