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칼럼] 가공기술 없이 첨단소재산업 못 키운다

입력 2015-06-07 20:34  

"갈수록 사용 늘어나는 첨단소재
뒤처진 가공기술이 발목 잡아
가공산업 생태계 활성화책 절실"

이영수 < 한국생산기술연구원장 >



애플이 처음 출시한 웨어러블 기기인 애플워치 디스플레이의 소재는 사파이어다. 사파이어로 만든 패널은 기존의 강화유리와 달리 어지간한 충격과 긁힘에도 흠집조차 생기지 않는다. 스마트기기 액정화면의 긁힘과 파손으로 적지 않은 비용을 치른 경험이 있는 소비자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애플은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차기작 디스플레이에도 사파이어 소재를 사용할 예정이다.

사파이어는 외부 충격과 자극에 강하고 빛 투과율이 높아 우주항공·방위산업 분야에서 사용돼 온 첨단 소재다. 다만 소재 가격이 비싼데다 완제품 생산을 위한 가공기술과 장비 확보가 쉽지 않아 활용에 적잖은 제약이 있었다. 그러던 것이 최근 자동차와 의료, 정보기술(IT) 등의 영역으로 확대되면서 수요가 급증하는 추세다. 애플워치에 앞서 일본 교세라와 중국 화웨이 등이 사파이어 글라스를 장착한 스마트폰을 선보였다.

소재 경쟁력은 산업 경쟁력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 탄소섬유복합재와 티타늄, 사파이어 등 첨단소재가 다양한 분야에 걀逾퓔庸?글로벌 산업의 지형과 경쟁구도를 바꾸고 있다. 보잉 항공기 ‘787 드림라이너’는 기체 중량의 50%에 해당하는 부분에 탄소섬유를 사용했다. 연료 효율을 20% 이상 끌어올린 비결이다. 에어버스 ‘A380’도 기체의 40%에 첨단소재를 사용했다. 메르세데스벤츠, BMW, 포드 등 글로벌 완성차업체들도 첨단소재 사용으로 엔진 크기를 줄여 연비를 개선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환경규제가 강화되고 고효율·경량화 제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첨단소재 사용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문제는 소재의 가공 능력이다. 지금까지도 첨단 소재부품의 상당수를 수입에 의존해오고 있는 마당에 향후 증가하는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을 만큼의 양산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실제로 주요 수출품목인 액정표시장치(LCD)산업만 해도 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PDP)과 LCD의 국산화율이 각각 58%와 66%에 그쳐 주요 소재부품 수입이 중단되면 생산 자체가 끊길 판이다.

국내 소재가공산업의 열악한 현황은 세계 수준과의 차이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지난해 기준으로 글로벌 공작기계업체 상위 10개사는 일본(6개사)과 독일,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 국내 기업은 10위권에 두 곳이 있으나 100위 안에 속하는 기업은 모두 네 곳에 불과하다. 이 같은 사정은 첨단소재로 갈수록 심각하다. 일례로 국내 기업의 발광다이오드(LED)용 기판 가공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세계 시장 점유율도 높은 편이지만, 사파이어 기판과 가공 장비산업은 규모와 연구개발(R&D) 투자, 상용화 실적 측면에서 모두 글로벌 선진 기업에 뒤처진다.

근본적인 문제는 국내 소재가공산업의 불균형한 구조에 있다. 대기업 중심의 전방산업과 鈒耐蓚?위주의 후방산업으로 양분돼 있는데다 그나마도 연매출 1000억원 미만의 중소기업이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핵심기술을 보유한 중견기업이 자리 잡지 못해 전후방 기업 사이에 유기적 협력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가공산업 생태계 전반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교량 역할을 해야 할 중견기업을 집중 육성하고 대다수 중소기업의 R&D 능력을 키우는 데 힘을 모아야 하는 이유다.

항공·자동차·IT산업을 중심으로 시장이 커지는 첨단소재산업은 보기 드문 ‘블루오션’에 속한다. 다른 분야에 비해 부가가치가 높아 원천기술 개발부터 양산에 이르는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한국 제조업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다. 중저가 가공장비에 편중해 온 그간의 관행에서 벗어나 원천기술 개발과 첨단소재 중심의 가공시스템을 마련하는 데 정부와 업계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이영수 < 한국생산기술연구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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