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민의 데스크 시각] 면세점은 내수산업 아니다

입력 2015-06-07 20:37  

윤성민 생활경제부장 smyoon@hankyung.com


올 상반기 재계의 가장 큰 화젯거리 중 하나는 ‘면세점 전쟁’이다. 면세점산업의 폭발적인 호황 속에 15년 만에 서울 지역에 시내면세점 신규 허가가 나온 게 열기를 부채질하고 있다. 모두 세 곳을 뽑는 입찰에 21곳이 몰렸고, 국내 굴지 대기업 총수들의 자존심이 걸린 흥미진진한 볼거리가 됐다.

대기업들의 각축장이 되고 있는 곳에는 경제민주화 논리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서울 시내면세점 신청 마감일인 지난 1일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면세점 시장은 대기업 재벌의 싸움판 사이에서 중소기업 중견기업은 온데간데 없다”며 관세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면세점이 정부로부터 받는 특허권 사업인데, 대기업만 혜택을 독점하고 있다는 불만이 깔려 있다.

면세점은 글로벌 비즈니스

이 대표의 표현과는 달리 면세점 시장에서는 이미 대기업보다 중소·중견기업의 참여가 더 많은 게 현실이다. 2012년부터 대기업이 받을 수 있는 면세점 사업권에 상한을 둔 결과 전국적으로 12곳의 중소·중견기업이 면세점 신규 허가를 받았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면세점 허가?받은 34곳 가운데 중소·중견기업은 절반이 넘는 18곳에 이른다.

규제를 통해 중소·중견기업에 문호를 확대했지만, 그 효과는 참담할 정도다. 신규 허가를 받은 12곳 중 4곳이 허가를 반납했고, 나머지 사업자도 상당수 적자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조3000억원대의 면세점 시장에서 중소·중견기업이 올린 매출은 약 4010억원으로 5%에도 못 미친다.

면세점은 업종 성격상 중소기업에 버거운 구조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상품구성(MD)에서 중소기업은 명품 브랜드를 입점시킬 역량이 부족해서다. 선두업체인 롯데면세점이 정부 중재로 일부 중소면세점과 상생 협약을 맺고, 명품 브랜드를 무료로 구매(소싱) 대행해줄 정도니 중소면세점의 자생력은 기대하기 어렵다. 수수료가 수입원인 백화점과 달리 면세점은 운영업체가 직접 상품을 매입하고 재고까지 떠안아야 하는 것도 큰 부담이다.

해외 쇼핑객 수요 창출이 관건

면세점 시장에서 중소기업이 부진할수록 일부 야당 정치인은 대기업 규제에 더 집착하고 있다. 현재 발의돼 있는 관세법 개정안들에는 대기업 면세점의 숫자 제한에서 더 나아가 매장 면적을 제한하거나, 술·담배 등은 중소기업 면세점에서만 팔도록 하는 식의 품목제한까지 포함돼 있다.

야당 정치인들은 대형마트와 동네슈퍼 간 갈등에서처럼 면세점도 골목상권 논리로 바라보는 것 같다. 그러나 이제 면세점은 내수산업으로 보기 어려운 산업구조를 갖추고 있다. 판매시설만 국내에 있을 뿐 소비자도, 궁극적인 경쟁자도 모두 해외에 있는 수출산업이다. 지난해 국내 면세점은 외국인 매출 비중이 80%를 넘어섰으니, 글로?비즈니스로 봐야 한다.

‘2020년까지 외국인 관광객 2000만명 달성.’ 한국과 일본은 똑같은 중장기적인 관광산업의 목표를 갖고 있다. 엔저(低) 공세와 함께 2020년 도쿄 올림픽이라는 국가적 대사를 앞둔 일본은 요우커(중국인 관광객) 유치의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다. 관광인프라가 부족한 우리로선 쇼핑 매력도가 최대 무기가 될 수밖에 없다. 면세점 산업의 관건은 해외 쇼핑객의 수요 창출 능력에 있고, 그것은 국가적 과제이기도 하다.

윤성민 생활경제부장 smy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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