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수진 기자 ] ‘아시아의 화약고’로 불리는 남중국해를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일본이 남중국해에서 집단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고, 중국은 해당 지역에서 러시아와의 해상 합동훈련계획을 공언하면서 그동안 ‘중국 대 미국·주변국’ 간 갈등 구조로 전개되던 사태가 ‘중·러 대 미·일’ 간 대결 구도로 심화·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나카타니 겐(中谷元) 일본 방위상은 지난 5일 중의원 평화안전법제특별위원회에 참석, 남중국해 분쟁이 집단 자위권 행사의 요건에 해당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법 이론으로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집단 자위권은 우방 등에 대한 공격을 자국의 공격으로 간주해 반격할 수 있는 권리로, 일본은 지난해 헌법 해석 개정과 지난 4월 미국과의 방위협력 지침 개정을 통해 그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올 들어 미국이 중국의 난사군도 내 인공섬 건설과 무기배치 등에 대응 수위를 높여나가자 일본이 보조를 맞추고 있는 것으로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은 해석했다.
일본은 이에 그치지 않고 중국과의 영유권 분쟁 당사국 지원에도 나섰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4일 베니그노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열고 “남중국해 내에서의 대규모 매립과 거점 구축을 포함한 일방적 행동에 심각한 우려를 공유한다”고 발표했다. 일본은 필리핀 방위력 강화 지원을 위해 △P3C 초계기 수출 △순시정 10척 제공 △3000억엔대 인프라 지원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아키노 대통령은 이날 난사군도 내 암초 매립 등을 시작한 중국을 겨냥해 “독일 나치와 같다”고 비난했다.
앞서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은 지난달 29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중국의 모든 간척사업은 즉각적이고 영구적으로 중단돼야 한다”며 “미국은 난사군도에 대한 정찰과 초계활동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은 러시아를 끌어들이는 ‘맞수’를 두고 있다. 중국 정부는 최근 아시아안보회의에서 러시아 측과 내년 5월 남중국해에서 공동 군사훈련을 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일본에 본부를 둔 외교전문 매체 디플로매트가 전했다. 회의에 참석한 아나톨리 안토노프 러시아 국방차관은 “훈련에는 중·러 양국 군(軍)뿐 아니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또 다른 우방국도 동참한다”고 말했다.
이는 앞서 중국 정부가 밝힌 전쟁 불사 입장과 맥을 같이한다는 분석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달 27일 공산당 기관지인 환구시보 사설에서 “만약 미국의 마지노선이 중국의 (인공섬 건설) 활동을 저지하는 것이라면 남중국 萬【?미국과 중국 간 전쟁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싱크탱크 미국기업연구소(AEI)는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사태가 결국 미·중 간 무력충돌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두 나라가 아시아태평양 지역 주도권을 놓고 첨예한 기싸움을 벌이다 보면 의도적이건, 우발적이건 무력충돌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이클 오슬린 연구원은 무력충돌로 이어지는 시나리오를 △우발적 사고 △의도적 위협 △간접적 충돌 세 가지로 제시했다.
포브스 등 외신은 남중국해의 지정학적, 경제적 가치 때문에 미국과 중국이 맞붙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중국의 꿈’ 실행계획인 일대일로(一帶一路)를 위해 주요 통로인 남중국해를 포기할 수 없고,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남중국해의 해상 장악권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남중국해에는 2130억배럴의 원유(세계 4위)와 3조8000억㎥의 천연가스, 중국이 120년간 쓸 수 있는 가스 하이드레이트(일명 불타는 얼음) 등이 매장돼 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1968년부터 남중국해는 핵심 분쟁지역이 됐다.
외신은 오는 9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간 정상회담 때 남중국해 분쟁문제가 주요 의제로 올라갈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전에 양국이 갈등을 완화 또는 해소할 수 있는 방안에 합의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박수진 기자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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