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배령 눈개승마, 선운산 미나리아재비…화장기 없이 고운 그 이름, 야생화

입력 2015-06-08 07:03  

설악산 곰배령, 미나리냉이 반기고
보기 힘들다는 조릿대 정원도 눈길

천마산, 등산로 하얗게 덮은 쪽동백
보현산, 수줍은 큰애기나리 등 활짝



[ 최병일 기자 ]
6월의 산자락은 눈부신 녹음으로 가득하다. 이맘때 산을 더욱 눈부시게 하는 건 지천으로 핀 야생화다. 야생화는 화장기 하나 없는 맨얼굴을 하고 있지만 바라보는 순간 마음까지 환하게 한다. 야생화 향기 가득한 능선 아래 부드러운 바람이 불면 그제야 여름이 활짝 핀다. 우리 산의 진짜 주인공, 야생화를 만나러 떠나보자. 야생화 생태여행을 위한 자세한 정보는 대한민국 구석구석 웹사이트(korean.visitkorea.or.kr), 야생화 정보는 산림청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nature.go.kr)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천상의 화원’ 곰배령의 야생화

설악산 대청봉과 마주 보는 점봉산(1424m) 정상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능선에 자리한 곰배령(1164m)은 ‘천상의 화원’이라 불리는 야생화 천국이다. 곰배령은 ‘곰이 하늘로 배를 드러내고 누운 형상’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점봉산은 입산금지 구역이지만 강선계곡부터 곰배령까지 약 5㎞에 생태탐방 구간이 조성돼 귀하고 아름다운 야생화를 만날 수 있다.

탐방로를 따라 오르며 계곡과 숲, 야생화를 만난다. 곰배령 정상과 가까운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비교적 완만해서 고운 자태를 뽐내는 야생화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신선이 내려와 놀고 간다는 강선계곡 물소리를 음악 삼아 설레는 발걸음을 옮긴다. 3~4년 만에 한 번 모습을 보인다는 조릿대 꽃이 정원을 이루고, 초여름까지 무리 지어 피는 괴불주머니와 투구 모양을 닮은 투구꽃도 인사를 건넨다. 다른 지역에서는 8월 말~9월에 꽃을 피우는 투구꽃은 강선계곡의 기후적 특성 때문에 늦봄부터 여름에 꽃을 볼 수 있다.

대나무처럼 마디가 있는 속새 군락 사이로 홀아비바람꽃이 귀여운 얼굴을 내민다. 몇 걸음 옮기자 너도바람꽃이 무리 지어 피었다. 장마가 지나면 피기 시작할 박새 군락은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시기를 달리하며 피고 지는 수많은 야생화가 계곡 주변의 울창한 숲 속에 서식한다.

펜션이 모여 있는 강선마을을 지나면 계곡은 좁아지고 숲은 더 울창해진다. 점봉산은 흙보다 돌이 많아서 돌무더기가 계곡 주변에 작은 정원을 만든다. 물이 잘 빠지는 돌밭과 계곡의 적절한 습기, 고산지대의 바람이 야생화 서식에 최상의 조건을 제공한다.

꽃이 지고 잎만 남은 야생화부터 이제 막 절정에 들어선 야생화, 여름 개화를 준비하는 야생화가 어우려져 걸음을 더디게 만든다. 미나리냉이와 전호, 눈개승마가 환한 얼굴로 반기고, 피나물과 줄딸기가 숲의 그늘을 밝혀준다. 다른 지역에서는 봄에 피는 세잎양지꽃이 계곡의 그늘 속에서 반가운 얼굴을 내민다. 물참대는 초록 이파리에 작고 하얀 꽃잎을 가득 달고 손을 흔든다. 광대수염, 족도리풀, 졸방제비꽃, 뫼제비꽃이 허리를 숙이게 만든다. 어여쁜 개별꽃이 무리 지어 작은 꽃밭을 이뤘다.

금빛 테두리가 독특한 금강애기나리, 꽃잎이 바늘처럼 가는 삿갓나물,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연령초를 만나며 야생화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 때쯤 경사가 급해지며 머리 위로 하늘이 언뜻언뜻 비치기 시작한다. 바람 소리도 강해진다. 곰배령에 가까워진 것이다. 가파른 탐방로를 오르느라, 주변에 핀 야생화를 살피느라 걸음이 두 배로 느려지는 구간이다. 키 작은 관목 숲을 지나며 하늘이 열리고, 마침내 곰배령의 드넓은 평원이 가슴에 안기는 순간이다. 강선계곡을 오르며 만난 야생화가 한자리에 모이는 평원에서는 아득히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능선도 볼 수 있다. 점봉산생태관리센터 (033)463-8166


족도리풀 눈 맞추는 꽃길, 남양주 천마산

수도권을 대표하는 야생화 산행지는 남양주 천마산이다. 해발 812m로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너른 품에 다양한 꽃이 철 따라 피고 진다. 호평동 수진사 입구에서 천마의집을 지나 돌핀샘까지 이르는 코스는 ‘야생화 길’이라 불러도 좋은 구간이다.

등산로를 하얗게 덮는 쪽동백과 국수나무 꽃이 6월 말까지 피어난다. 하트 모양 잎사귀 아래 자주색 꽃이 사랑스러운 족도리풀은 모녀가 헤어져 그리워하다 죽은 슬픈 이야기를 전해준다. 천마산에는 터리풀, 삿갓나물, 매발톱꽃, 산꿩의다리, 풀솜대, 참꽃마리, 용둥굴레, 지느러미엉겅퀴 등 이름도 정겨운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었다. 남양주시청 문화관광과 (031)590-4245

연풍새재 옛길 따라 조령산 야생화 여행

백두대간 중 하나인 조령산은 충북 괴산과 경북 문경의 경계다. 문경새재처럼 조령관에서 충북 괴산 방면으로 이어진 옛길이 있었다.

조령관에서 소조령에 이르는 연풍새재다. 조령산자연휴양림 입구부터 조령관까지 1.5㎞ 구간에 최근 복원된 옛길은 졸참나무와 소나무가 울창한 숲, 다양한 야생화를 관찰할 수 있는 생태 교육장으로 손색이 없다. 괴산군청 문화관광과 (043)830-3452, 조령산자연휴양림 (043)833-7994

선운산 숲길에서 숨은 꽃을 만나다

선운사는 이른 봄의 동백꽃과 벚꽃, 가을의 석산(꽃무릇)으로 유명하다. 선운산 자락에 숨은 야생화는 그 명성에 묻혀 있었다. 6월은 봄에 비할 정도는 아니지만 선운산의 생태를 누리기에 적합한 시기다.

탐방에는 선운산 생태숲에서 도솔암까지 이어지는 숲길이 안성맞춤이다. 왕복 2시간 남짓 걸리며 경사도 완만하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광대수염, 수정란풀, 사상자, 나도양지꽃, 참꽃마리, 미나리아재비 등 길가에 핀 야생화를 어렵잖게 만난다. 고창군청 문화관광과 (063)560-2456, 선운산도립공원 관리사무소 (063)560-8681

경북 지역 야생화의 보고, 보현산

영천 보현산은 비교적 손쉽게 야생화를 탐방할 수 있는 곳이다. 정상에 보현산천문대가 있어 해발 1000m까지 차로 올라간다.

보현산에서 야생화를 관찰할 수 있는 길은 두 곳. 천문대 정문을 마주 보고 오른쪽으로 작은 등산로가 있는데, 보현산 북사면을 따르는 이 길 옆에 다양한 야생화가 핀다. 반대편으로 보현산 정상 시루봉까지 이어지는 약 1㎞의 ‘천수누림길’에서도 야생화를 관찰할 수 있다. 요즘 덩굴개별꽃, 금강애기나리, 큰애기나리, 미나리냉이 등이 피었다. 영천시청 문화공보관광과 (054)330-6585

사진 한국관광공사 제공 / 최병일 여행·레저 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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