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번 확진자 최근까지 대학병원 2곳 출입
관리대상 파악 나흘 뒤 연락…명단 공유안해
병원들은 '환자 떠넘기기'…응급실 방치도
환자는 '메르스 병원'서 진료받은 사실 숨겨
[ 황정수/마지혜 기자 ]
‘슈퍼 확진자’로 알려진 14번 환자(35)가 머물던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진료를 받았던 76번 환자(75)가 사흘 전까지 자유롭게 서울 대학병원 두 곳을 출입한 것으로 조사되면서 정부의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관리 체계에 구멍이 뚫려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는 그동안 병원과의 정보공유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대학병원들은 76번 환자의 과거 기록을 파악할 수 없었다. 병원들은 환자 떠넘기기에 몰두했고 환자는 삼성서울병원 진료 사실을 일부러 숨겼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정보공유 부재, 병원의 책임감 부재, 의심환자의 시민의식 부재 등 ‘3무(無)’가 대학병원 두 곳을 ‘제3의 평택성모병원’으로 만들 가능성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메르스 병원 29곳으로 늘어
보건복지부의 8일 발표에 따르면 7일 기준 메르 ?감염자는 전일 대비 23명 급증한 87명이다. 사망자는 6명으로 한 명 늘었고 격리관찰자(2508명)는 147명 증가했다. 메르스 경유 병원도 하루 새 5곳이 추가돼 모두 29곳으로 불어났다.
메르스의 급속한 확산은 정부의 미흡한 초동 대처 때문이라는 지적이 우세하다. 1번 환자는 5월12일부터 삼성서울병원에서 메르스 확진을 받은 20일까지 8일 동안 병원 네 곳을 옮겨 다녔다. 일반 국민은 자신이 다녀온 병원이 메르스와 연관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정부는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거나 거쳐간 병원에 대한 모든 정보를 지난 7일에서야 여론에 등 떠밀려 공개했다. 삼성서울병원 등에서 86명의 2·3차 확진자가 생겨난 뒤였다.
◆정부, 총력 대응 다짐했지만…
최경환 국무총리 직무대행은 지난 7일 브리핑을 통해 물 샐 틈 없는 총력 대응을 다짐했다. 그러나 5~6일 서울 강동경희대병원과 건국대병원을 메르스 위험 지역으로 만든 76번 환자의 사례를 보면 정부의 관리 체계가 너무 허술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는 지난 6일까지도 “병원들과 관리대상에 대해 정보공유를 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학병원 응급실 관계자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76번 환자가 5~6일 강동경희대병원과 건국대병원을 들렀을 때 병원 관계자들은 확진자가 지난달 27~28일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있었던 ‘관리대상’인지 파악할 수 없었다. 건국대병원 관계자는 “정부가 각 병원에 모든 관리대상 명단을 통보한 상태가 아니었다”며 “응급실에 오는 모든 환자 정보를 공유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76번 환자가 14번 환자와 함께 삼성서울 늉?응급실에 머물렀던 것을 정부가 파악한 것도 퇴원 뒤 엿새가 지난 3일이다. 연락을 취한 것은 이로부터 나흘 뒤인 7일이다. 이날까지 정부는 76번 환자의 위치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난 3일부터 통합정보시스템이 가동됐지만 1차 버전이었기 때문에 당시 일부 관리대상의 과거 이력이 없었을 수 있다”며 허술한 관리 체계를 시인했다. 정부는 8일부터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 외래환자 방문 시 병원들이 의심자인지를 직접 조회할 수 있는 ‘의료기관의 메르스 대상자 조회시스템’을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환자 떠넘기기도 문제
대학병원들의 환자 떠넘기기도 메르스 확산에 일조했다는 지적이다. 강동경희대병원은 ‘삼성서울병원에서 암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는 이유로 5일 낮 고관절 골절로 응급실을 찾은 76번 환자에게 삼성서울병원 진료를 권했다. 삼성서울병원은 ‘입원시킬 수 없다’며 76번 환자를 돌려보냈다. 당시 76번 환자는 38도를 약간 넘는 미열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강동경희대병원이 처음에는 고관절 수술을 진행하려 했지만 내과의 반대로 다음날(6일) 오전 9시까지 76번 환자를 응급실에 방치했다. 76번 환자는 사설 응급차를 타고 건국대병원으로 이동했고, 8일 2차 확진 판정을 받았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실 진료 사실을 숨긴 76번 환자의 행동도 문제로 지적된다. 미열이 있었던 76번 환자는 ‘최근 메르스 의심 병원에서 진료받은 적이 있냐’는 의료진의 질문을 여러 차례 받았지만 사실을 숨긴 것으로 알려졌다.
황정수/마지혜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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