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한 분산 통해 기업가치 극대화"…발렌베리가의 '성공 비결'

입력 2015-06-08 22:40  

스웨덴 발렌베리 家門의 경영철학


[ 나수지 기자 ]
“발렌베리그룹은 대를 이어 가족이 경영하고 있지만 권한을 분산시켜 자기 규제가 가능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야코브 발렌베리 인베스터AB 회장은 7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대를 이은 가족 경영이 경영자들을 나태하게 만든다는 우려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FT는 이날 발렌베리 가문의 5세대 경영인인 야코브 회장(59), 페테르 발렌베리 2세 그랜드호텔 총책임자(56), 마르쿠스 발렌베리 스톡홀름엔실다은행(SEB) 회장(58)의 공동 인터뷰를 실었다. 세 명이 한자리에 모여 언론과 인터뷰한 것은 처음이다. 이들은 ‘소유’를 바탕으로 한 장기적·통합적 관점의 기업가치 추구와 기업 내 권력 분산을 통한 자기규제 등을 158년을 이어온 발렌베리 가문의 경영철학으로 꼽았다.

‘존재하되 드러내지 않는다’

발렌베리 가문은 스웨덴 2위 은행인 SEB와 유럽 최대 가전업?일렉트로룩스, 세계 최대 통신 장비업체 에릭슨, 항공·방위산업체 사브 등 19개 기업의 경영권을 직간접적으로 소유하고 있다. 기업가치를 모두 합하면 2500억유로(약 313조2200억원). 전체 임직원 수는 60만여명에 이르고, 가문이 소유한 주식을 모두 합하면 스웨덴 전체 상장 주식의 약 30%를 차지하는 대기업이다.

발렌베리 가문은 개인이 기업 지분을 소유하지 않는다. 모든 주식은 발렌베리그룹의 지주사인 인베스터AB가 갖는다. 발렌베리 가문이라 해도 공익재단과 기업 경영자로서 급여를 받을 뿐이다. 이 때문에 이들을 각종 부호 순위에서 찾기란 쉽지 않다. ‘존재하되 드러내지 않는다’는 발렌베리 가문의 철학이 투영됐다. 야코브 회장은 “세계적인 기업에 참여하는 기회를 가졌고, 재산을 둘러싸고 다투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나는 축복받았다”고 말했다.

발렌베리는 과학연구 분야에 기부를 많이 하는 기업으로 꼽힌다. 스웨덴 국적의 기초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 대부분이 발렌베리 재단의 도움을 받아 연구를 시작했을 정도다. 지난해에만 20억스웨덴크로나(약 2680억원)를 기부했다. 발렌베리그룹에 속한 기업이 좋은 경영실적을 내면 스웨덴의 연구 인프라에 많은 돈이 투자되고 결국 전체 기업 경쟁력이 살아나는 선순환 구조가 갖춰졌다.

소유 바탕으로 장기적·통합적 관점

FT는 발렌베리그룹의 성공요인을 두 가지로 분석했다.

첫째는 장기적인 관점을 가진 기업 오너가문이 있다는 점이다. 발렌베리그룹의 계열사 중 하나인 멘린케의 리처드 투미 최고경영자(CEO)는 “내가 멘린케의 CEO직 제의를 받아들인 이유는 기업 소유권이 보장돼있다는 점 때문이었다”며 “소유가 확실하지 않았던 기업에서 일했을 때는 한 분기가 장기적으로 계획할 수 있는 가장 긴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5년간 스웨덴 스톡홀름 증시가 70% 오르는 동안 발렌베리그룹 지주사인 인베스터AB 주가는 170% 상승했다.

둘째는 전체 계열사를 통합적으로 볼 수 있는 경영자가 있다는 점이다. 야코브 회장과 마르쿠스 회장은 현재 8개 계열사의 이사로서 경영전략과 임원 선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다만 계열사 경영은 능력 있는 외부 경영자에게 맡긴다. 투미 CEO, 로니 레텐 아트라스콥코 CEO, 요제프 애크만 전 도이치뱅크 CEO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발렌베리가의 기업이나 상품에는 ‘발렌베리’란 이름이 붙는 게 하나도 없다. 이름부터 계열사의 독립경영을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일을 우리가 할 수 없기 때문에 기업 내의 훌륭한 경영자들에게 의지한다”는 것이 야코브 회장의 설명이다.

가족이 경영하는 기업에서 후계는 언제나 관심의 대상이다. 발렌베리 5세대 경영인 세 명은 인터뷰에서 후계에 대한 설명도 내놨다. 발렌베리 가문 6세대의 현재 나이는 현재 3세에서 35세 사이. 30여명의 다음 세대 가운데 기업을 물려줄 다음 경영자를 뽑겠다는 것이다.

발렌베리 가문은 CEO가 되기 위한 최소 조건으로 창업자의 환경과 동일한 조건을 내거는 것으로 유명하다. 부모의 도움 없이 대학을 졸업하고 해외 유학을 마칠 것, 해군 장교로 복무할 것 등이다. 페테르 총책임자는 승계에 대해 “자녀에게 가문의 역사와 원칙을 가르치지만 무엇을 하라고 강요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나수지 袖?suj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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