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 수요 '급랭'…현대로템·LG상사 등 우량기업도 '미달 사태'

입력 2015-06-09 20:32  

위기의 한국 기업 - 회사채 시장 경색

기업 실적 부진에 미국 금리인상 가능성 겹쳐
4대그룹 A등급 기업도 연 5%대 고금리 발행



[ 이태호 / 하헌형 기자 ] 현대자동차그룹 철도차량 제조업체인 현대로템(신용등급 A+)은 회사채를 발행하기 위해 지난 8일 사전 수요조사(수요예측)를 실시했다가 깜짝 놀랐다. 총 2000억원어치(만기 3·5·7년)를 모집한 결과 1800억원의 신청(수요)만 들어왔기 때문이다. 특히 7년물(500억원)의 경우 아예 사겠다는 곳이 없었다. 현대로템은 결국 채권평가회사들이 평가한 ‘적정 금리(시가평가 금리)’보다 최고 0.2%포인트 높은 금리(공모 희망금리 상단)로 오는 15일 회사채를 발행할 예정이다.


○4대그룹 계열사도 고전

경기 부진과 미국의 금리 인상 가능성 등에 대한 우려 등으로 회사채 수요가 얼어붙고 있다. 신용등급 AA- 이상인 우량기업 발행시장에도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참여 금액이 모집 금액에 모자라는 ‘미달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투자자들이 하반기 금리 변동성이 커질 것을 우려하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제시하는 발행 금리를 거부하는 경우가 늘고 있기 ㏏?甄?

LG상사(AA-)도 지난달 5일 회사채를 발행하려다 낭패를 봤다. 3년물 600억원, 5년물 700억원 등 1300억원어치의 회사채 발행에 앞서 수요예측을 했지만, 정작 신청액은 800억원에 그쳤다. 모자란 500억원은 주관·인수 증권사들이 떠안았다.

현대차그룹 계열 자동차 부품회사인 현대위아(AA0)는 지난달 13일 회사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에서 대량 미매각 물량이 나오는 수모를 겪었다. 5년물 회사채 1000억원어치를 사겠다는 곳이 한 곳도 없었던 것. 수요예측을 주관한 한 증권사 관계자는 “당시 시장 금리가 급등(채권 가격 급락)한 것에 놀란 기관투자가들이 황급히 투자 의사를 철회했다”고 전했다.

KDB대우증권(AA+), 우리은행 조건부자본증권(AA-) 등 과거 인기를 모았던 우량기업 채권들의 수요예측도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뛰어난 업황 안정성을 바탕으로 작년 12월 모집 금액의 네 배에 달하는 수요를 모았던 발전업체 GS이앤알(A+)도 지난달 말 수요예측에선 모집액의 절반(5년물 기준)을 모으는 데 만족해야 했다.

○칼자루는 수요자 손에

이 같은 양상은 기업들의 자금조달 비용 상승으로 이어져 자칫 회사채시장 전반에 ‘고금리 삭풍’이 불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건설업체인 SK건설(신용등급 A)의 경우 이르면 이달 중 1000억~1500억원의 3년물 채권을 발행할 계획이다. 4대그룹 계열사임에도 우량기업 발행 금리의 두 배가 넘는 연 5%대를 감수해야 할 상황이다. 김상훈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지금은 기업명보다 무조건 금리가 높아야 투자자들의 눈길을 끈다”며 “A등급 기업들은 연 4% 후반~5%대 금??줘야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회사채 투자자들은 국내외 경기 부진과 엔화 약세 등으로 인해 국내 대기업들의 재무 안정성이 더 나빠질 위험이 있다고 보고 투자를 주저하고 있다. 신용평가사들의 연이은 신용등급 강등도 적지 않은 부담이다.

채권평가사들에 따르면 국내 ‘AA’ 신용등급 회사채의 평균 금리(이하 3년물 기준)는 이날 연 2.02%를 나타냈다. 국고채 3년물 금리 연 1.73%와의 격차는 0.29%포인트로 지난 4월 중순 0.20%에서 한 달 보름 만에 0.09%포인트 벌어졌다. 부도 우려에 비례해 ‘신용스프레드’로 불리는 이 격차는 전보다 벌어질수록 회사채 수요가 부진한 것으로 간주된다. 회사채 금리 상승(가격 하락) 속도가 시장 지표 금리인 국고채보다 빠르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태호/하헌형 기자 th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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