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한결 기자 ] “좋은 전시를 새로 기획하고는 싶지만 쉽지 않습니다. 책임을 지고 일을 벌일 수장이 없으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한 직원은 답답함을 토로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은 지난해 10월 정형민 전 관장이 학예연구사 특혜 채용 문제에 연루돼 직위 해제된 이후 8개월째 공석이다.
인사혁신처는 정 전 관장의 임기가 끝난 지난 1월 말 관장 공모에 들어갔다. 총 15명이 응모해 서류심사와 면접을 치렀다. 3월에는 홍익대 출신인 윤진섭 미술평론가와 서울대 출신인 최효준 전 경기도미술관장이 최종 후보로 압축됐다. 당초 4월 말로 예정됐던 결과 발표는 계속 미뤄졌다. 별다른 해명도 없었다.
마침내 문화체육관광부는 공모 결과 적임자가 없어 재공모하기로 했다고 지난 9일 발표했다. 전날부터 미술계 인사들 사이에서 돌았던 이야기 그대로였다.
문체부는 외부 압력을 막겠다며 공모 과정 비공개 원칙을 표방했다. 의도는 좋았지만 결과는 오히려 역효과였다. 진행 상황을 알 길이 없자 소문만 무성했다. 최종 후보 두 명의 출신 학교도 논란거리가 됐다. 서울대 출신과 홍익대 출신 인사들 사이에 알력이 있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돌았다.
지난 9일 발표한 재공모 결정에도 뚜렷한 근거 설명이 없어 논란을 야기했다. 문체부 대변인은 “결정이 늦어진 것은 예술계 유력인사들의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이 길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론수렴 과정이나 내용, 부적합 사유 등은 아무 것도 밝히지 않았다. ‘정무적인 판단’에 의한 결정이라는 의혹이 나왔다.
최 전 관장은 10일 오후 긴급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재공모 결정에 의혹을 제기했다. 최종 후보로 올라간 자신에게 문체부가 자진 사퇴를 종용했다고 주장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탈락 후보자의 명예를 고려한 문체부의 ‘과잉 친절’이었다”고 석연찮은 해명을 내놨다.
국립현대미술관장 공모는 논란만 남긴 채 원점으로 돌아갔다. 무엇이 문제일까. 확고한 원칙, 투명하고 공평무사한 공모 절차, 신속한 일처리가 아쉽다.
선한결 문화스포츠부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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