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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5년 동안 존속한 왕조 국가 고려. 이번 호의 글로 이제 고려에 대한 역사를 마무리지으려 합니다. 고려는 수많은 외침에 시달렸지만 그 속에서도 찬란한 문화를 이뤄냈습니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16년 만에 완성된 팔만대장경, 화려한 고려청자 등 앞선 신라 못지않게 다양한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특히 고려 후기에 제작된 그림 중에서 세계 최고의 불화이자 유럽의 모나리자만큼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불화가 등장하게 됩니다. 바로 ‘수월관음도’입니다.
진리 얻기 위해 관음보살을 찾아간 선재동자
고려 시대에 성행했던 불화 수월관음도는 말 그대로, 어두운 밤 달이 비친 물 가운데에 앉아 있는 관음보살을 그린 그림입니다. 뭔가 좀 부족하죠? 그림을 보면 이해가 빨라집니다. 자, 왼쪽 아래에 선재동자가 두 손을 합장하거나 허리를 굽혀 예를 갖추는 동시에 자신보다 몇 배나 큰 관음보살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왕관과도 같은 보관을 쓴 관음보살은 암벽 위의 방석에 앉아 왼쪽 다리는 내리고 오른쪽 다리는 반대편 무릎 위에 올려놓은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 뒤로는 광배가 보이고 등 뒤쪽에 조금 어둡지만 한 쌍의 대나무도 보입니다. 맞은편에는 버들가지를 꽂은 정병이 있으며 그 아래를 보면 산호도 보이고 연꽃도 보입니다. 관음보살의 왼쪽 발을 연꽃이 받쳐주고 있는 듯하네요. 그렇다면 선재동자와 관음보살은 왜 만나게 됐을까요?
수월관음도는 중국 당나라 말기에 시작해 송대에 크게 발전했습니다. 특히 둔황 지역에서 발전했으며 고려에도 영향을 주게 됩니다. 고려에서는 13~14세기께에 유행했는데, 현재까지 40여 점 정도의 수월관음도가 알려져 있습니다. 그 중 여러분도 교과서에 어김없이 소개되는 혜허의 ‘수월관음도’를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수월관음도는 중생 구제를 지향하는 대승불교의 경전인 《법화경》과 《화엄경》의 내용을 바탕으로 그려졌습니다. 《화엄경》에는 진리를 깨닫기 위해 길을 나선 선재동자가 남쪽 보타락산에 있는 관음보살을 찾아가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관음보살은 원래 성불하기 위해 도를 닦다가 다른 중생들을 도와주기 위해 인간 세상에 머물러 있는 존재로, 중생들이 재난을 당했을 때 구제해주거나 질병을 막아주기도 하고 외적이 침입하면 구해주기도 합니다. 관음보살은 정병의 감로수를 중생에게 나눠줌으로써 모든 중생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갈증을 해소해준다고 합니다.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는 관음보살
《화엄경》에는 선재동자가 이 관음보살을 찾아가보니 서쪽 골짜기에는 시냇물이 굽이쳐 흐르고 관음보살이 금강석 위에 가부좌하고 앉아 있어, 매우 기뻐하며 합장을 하고 눈도 깜빡이지 않고 관음보살을 쳐다본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그런데 고려 후기의 수월관음도는 이 《화엄경》의 내용을 따라 그린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조금 다른 점이 곧 발견됩니다. 그림 속 관음보살은 금강석이 아니라 풀자리 위에 앉아 있고, 반가좌의 자세이며 경전에 등장하지 않는 산호와 연꽃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미술사학자들은 이 그림과 관련된 문헌을 찾아보게 됐지요. 우선 《고왕경》이라는 경전을 살펴보니 그 속에 관음보살이 발을 내려 연꽃을 밟음으로써 많은 꽃이 피게 되고 감로수로 중생을 구제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화엄경》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그림의 도상이 조금 더 이해됩니다. 한편, 고려 후기 쓰여진 《삼국유사》에서 이 수월관음도를 설명해줄 단서를 몇 가지 찾게 됩니다. 책에 따르면 신라의 의상대사가 당에서 돌아와 관음보살이 해변 굴속에 산다는 말을 듣고 찾아갔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7일 동안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고 만나기를 청하자 동해 용이 나타나 여의보주를 한 알 바칩니다. 또 7일을 빌자 드디어 흰 옷의 관음보살이 나타나 산마루에 한 쌍의 대나무가 솟아날 것이니 그곳에 사찰을 지을 것을 부탁합니다. 의상이 그 말을 받들고 굴에서 나오자 곧 대나무 한 쌍이 땅에서 솟아 나왔다고 합니다. 그곳이 바로 오늘날 강원도 동해안의 양양 낙산사입니다.
수월관음도에 투영된 고려인의 소망
자, 그렇다면 수월관음도에서 관음보살의 등 뒤로 보이는 한 쌍의 대나무가 이해될 것입니다. 또한 고려의 귀족 또는 귀부인과 같은 얼굴을 한 관음보살이 흰색 또는 금가루에 아교를 섞은 금니(金泥)로 겹쳐 그린 투명한 옷을 입은 것 또한 이해되겠지요? 이렇게 이 한 장의 그림을 통해 관음보살과 관련된 여러 경전의 구절이 시각적으로 확연하게 전달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림 속에 당시 고려인들이 절절히 소망하는 것들이 투영돼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려 후기는 빈번한 외적의 침입과 내부 혼란으로 고통받던 시기이기도 하지요. 왕부터 귀족은 물론 백성들까지 그 고통을 누군가 덜어주고 구제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요. 그것이 바로 수월관음도에 투영된 고려인의 마음이었으며 그만큼 제작도 빈번히 이뤄진 것입니다.
단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수십 점의 수월관음도 중에서 대다수가 외국에 있다는 것입니다. 다수는 일본에 있으며 독일이나 미국에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왜구의 침입과 조선 시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일본에 약탈당한 것이 주요 원인이지요. 언젠가 이 수월관음도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고대하며 이제 다음 호부터는 조선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 최경석 선생님
최경석 선생님은 현재 EBS에서 한국사, 동아시아사 강의를 하고 있다. EBS 진학담당위원도 맡고 있다. 현재 대원고 역사교사로 재직 중이다. ‘청소년을 위한 역사란 무엇인가’ ‘생각이 크는 인문학 6-역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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