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로 보는 재테크] 분묘가 '계륵'이 된 사연

입력 2015-06-15 07:03  

1765년 윤(윤달) 2월 깊은 밤 왕의 행차가 경희궁 흥화문을 향했다. 궁궐문 밖에는 심정최(沈廷最)와 윤희복(尹熙復)이 있었다. 명망 있는 두 가문이 서로 간 한치의 양보도 없는 소송으로 국정을 어지럽히는 상황에 영조는 진노했다. 왕이 직접 죄인을 심문하는 친국 후에 태형을 집행하고 유배를 명령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태형을 당한 두 노인은 귀양길에 사망했다.

당초 고려 명재상 윤관(尹瓘)과 조선 명재상 심지원(沈之援)의 묘가 경기 파주에 있었다. 윤씨가 먼저 입장(入葬)했으나 오래돼 멸실됐다. 뒤이어 외손인 심씨가가 그 산을 점령하고 윤관 묘 윗자리에 심지원의 묘를 썼다. 세월이 흘러 윤관 묘의 비석이 발견되자 파평 윤씨와 청송 심씨의 묘 수호를 위한 산송(山訟·묘지를 둘러싼 소송)에 불이 붙었다. 두 가문의 필사적인 다툼은 영조의 친국도 무색하게 250년을 이어갔다.

길지(吉地)에 대한 욕망이 불러온 산송은 노비 소송, 전답 소송과 더불어 조선의 3대 소송이다. 분묘를 수호하는 사대부가라면 한 번은 몰아치는 태풍의 핵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에 ‘묘지 소송이 요즈음 폐속이 돼 투구지살(鬪毆之殺·싸우고 때려 죽임)의 절반이 이 때문이다’고 지적할 정도였다.

흔히 길지는 좌청룡이 춤추고 우백호가 머물면서 싸고돌아 당판이라는 국(局)을 형성한다. 그런데 문제는 내 땅의 좌청룡이 남의 땅의 우백호라는 점이다. 당연지사 내 땅은 남자에게 남의 땅은 여자에게 영향을 미치니, 이곳에 다른 묘가 들어서려고 하면 이전투구가 펼쳐졌다. 투장, 늑장, 암장이 그 폐해의 결과다.

경국대전에는 일인지하 만인지상 정1품 영의정의 분묘 크기를 사면 각 100보(약 130m)로 정했다. 사실 용호(龍虎)를 포함해 넣기에는 작은 국면이다. 따라서 나라의 국법도 무시한 용호수호(龍虎守護)의 범위로 국(局)은 커져만 갔다. 강물 건너 보이는 책상 모양의 안산(案山)까지 끝도 없이 욕망은 손을 뻗었다.

이쯤 되는 면적이면 조선시대 약 100가구, 500여명의 산 사람들이 모여 살며 자급자족이 가능한 마을 크기다. 오늘날 일본 건축가 야마모토 리켄의 장소를 기억하고 삶을 공유하는 지역 사회권의 면적과 일치한다. 야마모토가 설계한 판교 월든힐스나 강남 보금자리주택 A3블록을 상상하면 안성맞춤이다.

그동안 음택(陰宅)이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수없이 제기됐고 해결책도 모색돼 왔다. 그러나 풍수학인의 눈에 분묘 하나는 산천의 팔다리를 지켜온 마지막 계륵이다. 조상에 대한 위선의식(爲先意識)이든 길지에 대한 욕망이든 개발의 깃발 아래에서 산하를 보전한 일등 공신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려내고 있는 꼴이다. 산 자들을 위한 도시 계획이 지속 가능하려면 반드시 우리 산천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파평 윤씨와 청송 심씨의 조화로운 화해처럼 말이다.

강해연 < KNL디자인그룹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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