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행복은 주관적 가치…보는 기준따라 행복지수 달라져

입력 2015-06-19 19:17  

Cover Story - 경제성장은 행복의 공약수



유엔이 지난 4월 발표한 국민 행복도 조사에서 한국은 조사대상 158개국 중 47위를 기록했다. 스위스, 아이슬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캐나다가 1위에서 5위를 차지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매년 발표하는 행복도 지수에서도 우리나라는 하위권에 속한다. 경제 성장에 비해 사람들의 행복도는 아직 후진국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통계는 청소년 자살률 세계 1위라는 부끄러운 통계와 함께 경제 성장 정책을 비판하는 논리의 근거로 제시된다. 하지만 행복도를 정책 주장의 근거로 사용할 때는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무엇보다 행복은 매우 주관적인 개념이라는 점이다. 행복지수로 발표되는 수치 역시 사람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주관적 결과다.

행복에 대한 다양한 철학적 견해

칸트는 행복과 관련해 가장 어려운 것은 ‘무엇을 행복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람들은 각자 가치관이 다르고 어떤 상태를 행복한 상태로 보는지도 다르기 때문에 행복의 개념을 보편화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봤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은 인간이 ゾ臍?완성시킬 때 도달하는 정신적 상태’라며 행복을 ‘최고선’으로 생각했다. 인간은 결국 행복을 얻으려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벤담과 같은 공리주의자들은 행복의 중심에 쾌락이 있다고 봤다. 행복은 쾌락에 뿌리를 둔 기쁨과 즐거움 같은 긍정적 정서라는 것이다. 즉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상태가 되면 뇌에서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고 행복해 한다는 것이다. 행복도를 높이려면 공리주의의 관점에서는 쾌락을 높여야 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서는 쾌락을 넘어서 인간 이성을 통한 자아실현을 도모해야 한다.

행복을 측정하는 지수

경제학자들은 국내총생산(GDP)을 대체할 새로운 지표로 삶의 질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나타내는 행복지수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대표적인 행복지수로는 2002년 영국의 심리학자 로스웰과 인생상담사 코언이 발표한 행복지수가 있다. 이 지수는 ‘인생관·적응력·유연성 등 개인적 특성을 나타내는 P(personal), 건강·돈·인간관계 등 생존조건을 가리키는 E(existence), 야망·자존심·기대·유머 등 고차원 상태를 의미하는 H(higher order) 등 3가지 요소로 구성되다. 예를 들어 긍정적이고, 우울한 기분에서 비교적 빨리 벗어나며 스스로 잘 통제한다는 P지수에 해당한다. 또 건강·돈·안전·자유 등 현재의 조건에 만족한다는 E지수, 가까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고, 자신이 세운 기대치를 달성하고 있다는 H지수에 속한다. 로스웰과 코언은 이들 3요소 중 생존조건인 E가 개인적 특성인 P보다 5배 더 중요하고, 고차원 상태인 H는 P보다 3배 더 중요한 것으로 판단해 행복지수를 P+(5×E)+(3×H)로 공식화했다.

국민총행복지수(GNH)는 부탄에서 1970년대에 개발돼 2007년부터 OECD도 활용하고 있다. OECD는 국민총행복을 평균행복, 행복수명, 행복불평등, 불평등조정행복 등 4개로 구분하고 매년 국가별로 측정하고 있다.

이 밖에 여러 경제단체 학자들이 나름의 행복지수를 개발해 측정,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발표되는 행복지수는 대부분 로스웰과 코언의 행복지수처럼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주관적이다. 그래서 행복지수를 정책 판단의 도구로 활용하는 국가는 거의 없다. GDP가 여전히 대표적인 경제지표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물질과 행복의 관계

행복을 설명할 때 소득 즉 물질과 얼마나 관련이 있는가 하는 문제가 항상 제기된다. 많은 사람들은 행복은 소득과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 영화나 소설도 가난한 사람들이 찾아가는 행복을 소재로 즐겨 다룬다. 하지만 소득이 낮으면 행복해지기 힘들다는 것이 실증분석이다. 즉 행복의 조건으로 소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욕구는 생리-안전-애정-존경-자아실현의 욕구로 점차 높아진다는 매슬로의 인간욕구 5단계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즉 소득은 안전이나 애정, 존경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어느 정도 필요하다.

미국경제조사국(NBER)도 ‘행복과 소득, 둘 간의 포화점은 있는가’라는 보고서에서 “세계 상위 25개국의 소득별 국민행복도를 분석한 결과 가구 소득과 행복은 정비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교수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은 “소득이 많을수록 행복감도 높아지지만 연소득이 7만5000달러를 넘어서면 소득 증가에 따른 행복감은 최소화된다”고 했다. 동양 고전 맹자에는 유항산 유항심(有恒産 有恒心)이라는 말이 나온다. 일정한 재산과 생업이 있어야 일정한 마음도 생긴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도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속담이 있다.

■경제와 행복…이스털린의 역설이 깨지다

이스털린의 역설은 소득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고 기본적 욕구가 충족되면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에는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미국 경제사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이 1974년 주장한 개념이다.

그는 1946년부터 빈곤국과 부유한 국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국가 등 30개 국가의 행복도를 연구했는데,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행복도와 소득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현상을 발견했다. 그는 당시 논문을 통해 비누아투, 방글라데시와 같은 가난한 국가에서 오히려 국민의 행복지수가 높게 나타나고, 미국이나 프랑스 같은 선진국에서는 오히려 행복지수가 낮다는 연구 결과를 주장의 근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200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베시 스티븐슨 교수팀은 이스털린의 설문보다 더 광범위한 실증조사를 통해 이스털린의 주장이 잘못됐다고 반박했다. 스티븐슨은 “132개국을 대상으로 지난 50년간 자료를 분석한 결과 부유한 나라의 국민이 가난한 나라의 국민보다 더 행복하고, 국가가 부유해질수록 국민의 행복 수준은 높아졌다”고 말했다. ‘돈이 있어야 행복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사실을 확인해준 것이다.

물론 국민 개개인을 보면 돈보다 명예나 다른 곳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국가 차원에서 보면 국민소득이 늘어날수록 복지 수준과 행복감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대다수의 견해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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