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 메르스 걱정까지…일상생활 망치는 '불안장애 주의보'

입력 2015-06-20 07:05   수정 2015-06-23 10:49

이준혁 기자의 생생헬스 - 불안장애 앓는 대한민국

작년 10명 중 1명이 불안장애
공황장애·강박증 등 5개로 구분…이유없이 불안한 범불안장애 최다
대뇌 기능 이상 생기면 발병…명상·호흡법으로 긴장 완화해야
심하면 인지행동 치료 등 필요



[ 이준혁 기자 ] 최근 들어 ‘불안심리’를 호소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가 지속되면서 언제 어디서 감염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등이 확산되고 있어서다. 특히 메르스 사태는 취업난, 고용불안, 잊을 만 하면 터지는 ‘묻지마 범죄’ 등 각종 사회적 불안 요인들을 한꺼번에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불안심리는 단순히 불안한 기분으로 끝나지 않는다. 일상생활을 하기 힘든 ‘불안장애’, 예컨대 정신건강 문제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불안장애 유병률(전체 인구 중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의 비율)은 12.3%로, 5년 전에 비해 28.4% 증가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최근의 불안장애 유병률이 지난해보다 2~3배 정도 높을 것으로 추정한다.


메르스 한 달째, 불안감 호소 늘어

초등학생 아들(9)과 어린이집에 다니는 딸(6)을 둔 한모씨(41)는 지난 2주가량 두문불출했다. 한씨 가족이 살고 있는 경기 평택시에서 첫 메르스 확진 환자가 나온 이후 어린이집과 초등학교가 차례로 휴업에 들어갔다. 한씨 자신이 운영하는 피아노학원도 무기한 휴업 중이다. 주말마다 하던 외식 대신 ‘방콕’(종일 집에 머무는 것)을 하게 됐고, 평소 자주 찾던 시내 백화점·아울렛에도 발길을 끊었다. 한씨는 “메르스 사태 초기부터 집 안에서 지내고 있는 평택지역 엄마들의 피로도가 극에 달한 상태”라면서 “신경이 예민해지고 아주 작은 것에도 깜짝 놀란다. 메르스 뉴스가 나오는 TV나 인터넷을 볼 때면 겁부터 난다”고 토로했다.

지난달 20일 국내 첫 메르스 확진 환자가 나온 지 한 달이 지나면서 사실상 ‘셀프 격리’ 상태를 지속해온 사람들의 한숨이 커지고 있다. 스트레스와 불안감이 임계점에 도달한 것이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메르스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심리적 우울증이나 불안상태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병원에 가는 것을 꺼리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그냥 방치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심한 불안은 감정 아닌 병

‘불안’은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다. 하지만 일상생활을 못할 정도로 불안해 한다면, 이는 병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불안장애’는 다른 사람보다 특히 걱정을 많이 하는 등 불안장애에 취약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에게서 잘 생긴다. 불안장애는 증상에 따라 크게 다섯 가지로 나뉜다. 이유 없이 계속 불안한 ‘범(汎)불안장애’, 갑작스러운 불안감 때문에 죽을 것 같은 느낌의 ‘공황장애’, 특정 상황이나 대상에 대해 극도로 두려워하는 ‘공포증’, 불안해서 특정 생각 혹은 행동을 반복하는 ‘강박증’, 사고 후 비슷한 경험을 했을 때 과도하게 불안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가 있다. 지난해에는 세월호 사고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않는 사람이 많았다.

이 중 다른 네 가지 증상보다 진단이 어려운 ‘범불안장애’ 환자가 가장 많다. 서호석 강남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세월호 사고 이후에는 슬프고 아픈 마음 때문에 심리적으로 스트레스를 느끼는 상태였지만 지금은 현재 진행형인 사건(메르스 확산)으로 불안과 공포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서 교수는 “불안장애는 진단이 어렵고 환자의 3분의 1만 발병한 해에 치료를 받고, 나머지는 10년 이상 지난 뒤에 병원을 찾는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며 “대형사고나 경제 불안·범죄 등 불안 요인이 증가할수록 불안장애 위험이 높아진다”고 덧붙였다. 불안장애는 생리학적으로 대뇌의 기능 이상, 노르아드레날린·세로토닌 등의 신경전달물질 불균형 때문에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불안장애로 가지 않으려면

‘단순 불안’이 ‘불안장애’로 악화되지 않으려면 불안, 긴장, 초조함을 느꼈을 때 이를 가라앉히려는 노력을 수시로 해?한다.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불안감이 채 가라앉지 않은 상황에서 또 다른 불안 상황이 닥치면 불안장애로 이어지기 쉽다”며 “특히 평소에 불안하고 초조한 사람은 조급해지면서 객관적 생각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말했다.

전문의들은 평소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근육이완·호흡법을 권했다. 임 교수는 “편안한 자세로 눈을 감고 깊게 호흡하는 점진적 이완법으로 긴장을 어느 정도 완화시킬 수 있다”며 “손 발 팔 다리 어깨 목 등의 근육에 차례로 힘을 준 뒤 7초간 멈췄다가 서서히 힘을 빼는 방법인데, 하루 2회 정도만 해도 효과가 있다”고 소개했다. 명상도 도움이 된다.

임 교수는 “세상에 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불안감은 커진다. 친구·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늘리고 대화를 나누거나 적당한 운동을 하면서 근육을 풀어주면 불안 해소에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심하면 약물 도움 받아야

불안장애로 진단받으면 불안장애 치료제(벤라팍신 성분 등)를 복용하기도 한다. 인지행동 치료, 뉴로피드백 치료를 병행하면 효과가 좋다.

인지행동 치료는 불안하지 않은 상황에서 불안해하는 잘못된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교정하는 치료다. 뉴로피드백 치료는 불안·긴장 상태가 되면 뇌파 중에 과도하게 활성화되는 하이베타파를 정상화하는 뇌파 교정 치료다. 뇌파측정 장비를 머리에 두르고 뇌파가 긴장했을 때 나오는 베타파, 편안할 때 나오는 알파파를 조사해 어떤 상황에서 알파파를 늘릴 수 있는지를 처방한다.

도움말=윤대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서호석 강남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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