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창의 데스크 시각] 메르스로 드러난 한국의 민낯

입력 2015-06-21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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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창 부국장 겸 지식사회부장 leejc@hankyung.com


박근혜 대통령의 최근 지지율이 29%(갤럽)로 떨어졌다. 1년 전 세월호 참사 때도 이렇게 밀리진 않았다. 취임 이후 최저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에서 보여준 정부의 무능에 대한 실망과 메르스에 대한 불안감이 얼마나 큰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메르스 사태는 ‘나사 풀린 대한민국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줬다. 초동 대응에 실패한 정부, 안이한 병원, 소통 부재, 성숙하지 못한 시민의식은 1년 전 세월호 참사와 ‘닮은꼴’이다.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던 다짐은 온데간데없다. 세월호 참사 교훈은 우리 사회 어디에도 없었다.

잊혀진 세월호 참사 교훈

애당초 메르스를 막을 정부 시스템은 없었다. 매뉴얼조차 없었다. 메르스 1번 환자의 격리부터 실패한 건 당연한 결과였다. 초동 대응에 실패하면서 메르스 환자가 여기저기서 발생했다. 감염병원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니 국민은 답답하고 불안했다. 정부는 “확산은 없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낙관론만 되풀이했다. 그 사이 감염병원을 통해 감염자는 급속히 늘어났다.

정부가 사과하고 총력 대응에 나선 것은 2주가 지나서였다. 이때는 이미 감염자가 100명에 육박해 통제가 어려워진 상태였다. 대통령은 보이지 않았다. 컨트롤타워는 없었다. 정부의 총체적 리더십 부재와 불통이 사태를 키운 것이다. 박 대통령이 미국 방문을 연기하고 현장을 찾은 건 이미 국민의 마음이 돌아선 뒤였다.

나사가 풀린 건 정부만이 아니다. 상당수 병원은 감염관리에 소홀했다. 의심환자가 병원을 찾아도 격리하지 않았다. 확진환자와 접촉한 의료진과 환자들 상당수를 방치했다. 국내 최고 의료수준을 자랑한다는 삼성서울병원이 진원지였다는 사실에 국민의 충격은 더 컸다.

시민의식도 빼놓을 수 없다. 메르스 확진환자와 격리자들 일부가 격리수칙을 지키지 않았다. 격리상태에서 골프를 치고 강의를 나갔다. 출국한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한 감염자는 보건소의 구급차를 거부하고 택시로 가까운 병원을 찾는 등 독단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공동체에 대한 배려가 없는 시민의식의 한 단면이다.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정부는 즉각대응팀을 상시화한다고 한다. 정치권은 벌써부터 메르스 관련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기구를 만들고 조직을 개편하는 땜질식 처방은 과거에도 수없이 봐 왔다. 질병관리본부와 국민안전처는 바로 위기 때 나온 정부의 처방전이었다. 이번 사태엔 모두 무용지물이었다.

임기응변식 대책만으론 제2, 제3의 메르스 사태를 막을 수 없다. 이번 사태는 ‘기본의 망각’에서 비롯됐다. 정부와 병원, 시민 모두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기본으로 돌아가야

정부는 당장 매뉴얼부터 만들어야 한다. 대형 사건이나 국가적 위기 상황이 닥치면 자동으로 총리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도록 해 체계적인 대응에 나서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국민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위해 정보공개에 대한 명확한 기준 마련도 시급하다. 병원도 차제에 자체 매뉴얼을 갖추는 등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무엇보다 성숙한 시민의식을 정착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시민의 협조 없는 정부 대책은 작동하기 어렵다. 나보다는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시민의식이 절실하다.

이재창 부국장 겸 지식사회부장 leej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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