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술 사업화는 엄두도 못낼 판
시범사업 가능토록 길 터줘야"
이민화 < KAIST 초빙교수·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 >
신(新)성장동력 창출을 위해 융합 신기술의 신속 대응을 가능케 하는 ‘시범사업 규제개혁 특별법안’ 통과가 시급하다. 주요 국가에서는 스마트 의료, 무인 자율주행 자동차, 무인항공기 등의 시범사업을 위한 입법 지원이 이뤄지고, 그 결과 다양한 신산업이 성장과 고용을 이끌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신성장동력을 강조하면서도 융합기술의 시범사업이 제대로 뿌리를 내릴 토양은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에서 융합 신기술을 활용한 융합기술 시범사업이 정부 지원은커녕 규제 장벽에 부닥쳐 사업화가 막힌 사례는 너무나 많다. 필자가 투자했던 벤처기업이 세계 최초로 인공심장 개발과 인체 이식에 성공했으나 규제로 문을 닫은 반면, 소라텍과 하트웨어 등 미국 후발 기업의 가치는 조 단위에 이르고 있다. 역시 2000년 초 한국 의료의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세계 최초로 내놓은 ‘당뇨폰’ 등 원격의료 사업은 규제로 인해 미국에 주도권을 뺏기고 말았다. 핀테크(금융+기술)의 경우 공인인증서 강제화라는 ‘갈라파고스적 규제’로 액티브X가 과도하게 사용돼 한국을 금융 후진국으로 전락시켰다. 그나마 작년 박근혜 대통령의 ‘천송이 코트’ 발언으로 정상화 길에 들어서고 있다. 한국이 중국의 알리바바보다 훨씬 먼저 핀테크 결제 기술을 개발한 나라라는 사실이 가슴 아프다.
아무리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하더라도 경직된 법과 제도 때문에 사업화가 지연된다면 경제적으로는 의미가 없지 않은가. 한국은 한마디로 ‘기술이 번 것을 제도가 까먹는 구조’인 상황이다. 한국의 경쟁력 취약 분야인 금융, 교육, 의료 등의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융합을 가로막는 심각한 규제에 있다. 신산업 창출을 통해 성장과 고용의 신성장동력을 개척해야 할 절박한 한국 경제 상황에서 우리 스스로 성장 기회를 무산시키는 우(愚)를 범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다.
이런 관점에서 시범사업에 관한 한 기존의 복잡한 규제를 유예하는 ‘시범사업 규제개혁 특별법안’은 시의적절한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선 구글이 ‘자율주행차 면허’ 아래서 70만마일의 무사고 운행을 기록하며 무인 자동차 산업을 선도하는데, 한국의 도로교통법은 무인 도로주행을 금지하고 있어 미래산업 기회를 없애고 있다. 무인항공기인 드론의 경우 우리는 국토교통부의 운송 허가, 방송통신위원회의 전파 허가와 더불어 국방부의 사전 운항 허가 등 복잡한 규제를 하고 있어 산업의 주도권을 중국에 완전히 뺏기고 있다. 핀테크에 대해 영국은 300만파운드 이하에는 규제를 하지 않고 그 이상이 되면 적정 규제를 가한다. 시범사업 이후 안전성과 적정성이 검증되면 본안 법률 개정을 하는 것이 시간을 단축하는 합리적 대안이 아니겠는가.
시범사업 규제개혁 특별법의 제정은 빠를수록 좋다. 통상 기존 관련 법안들의 제정과 개정에 수년이 필요한 현실에서 개별법의 개정보다는 시범사업을 우선 시작할 수 있는 시범사업 특별법이 탁월한 대안이다. 여기에서 반드시 지적할 사항은 시범사업 촉진이라는 입법 정신을 살려 심의위원회가 지나치게 인허가에 시간을 끌지 않도록 운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입법권을 가진 국회에 시범사업의 추진 현황과 문제점을 사후 보고하는 입법권의 존중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동일한 맥락에서 영국의 핀테크 사례와 같이 일정 규모 이하의 창업벤처 규제는 유예하는 것이 국가 신성장동력 창출을 위해 절실하다. 가칭 ‘창업벤처 규제 유예제도’다. 융합기술 활성화를 통해 신성장 동력을 창출할 수 있도록 시범사업 규제개혁 특별법안 통과를 촉구한다.
이민화 < KAIST 초빙교수·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 mhleesr@gmail.com >
[한경+ 구독신청] [기사구매] [모바일앱]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국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