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은 아직 미성숙 국가
개별 국가 뛰어넘는 높은 비전 세워야
지금의 갈등구조 벗어난다주필"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
동북아 3국의 갈등은 지리의 인접성만큼이나 필연적이다. 서로가 상처를 더 깊게 파고 있다. 어제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아 한·일 지도자들이 대사관을 교차 방문한 것만도 잘했다고 해야 할 것인지…. 실망스럽고 개선의 전망이 있는 것도 아니다. ‘65년 협정’은 한국이 너무도 어려울 때 맺어진 것이라는 때늦은 자각이 식민지배의 추억을 자꾸 악화시킨다. 위안부나 강제노역의 추억은 그래서 쉽게 잦아들지 않는다. 더구나 그것은 정치적으로 자꾸 자라난다. 중국에 대해 친화성을 보이는 한국인이 꽤 많다는 사실도 놀랄 일이다. 지배의 양식은 달랐지만 2000년 지배와 36년 지배는 이렇게 서로 다른 반응을 부를 수도 있다. 중국은 한국인의 마음 속에 종종 체념과 수용적 자세를 불러일으킨다.
고양되는 민족주의의 유혹은 언제 어디서나 경쟁자를 적대시하고 악마화하는 것으로 자양분을 얻는다. 한·중·일 3국이 바로 그렇다. 서 寬?잘난 척하지만 알고 보면 허약하기 짝이 없다. 중국부터가 그렇다. 중국의 허세는 너무 잘 알려진 것이지만 공산당 정권은 숨기고 싶은 과거를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에드가 스노가 중국의 붉은 별을 쓴 것이 헛된 자부심의 원천일 뿐 공산당은 사실 역사에 기여한 것이 별로 없다. 일본과 싸우는 장제스의 뒤에 총질을 해댔을 뿐이라는 비난이 장제스 잔당의 주장만은 아닐 것이다. 내세울 만한 항일투쟁의 전적이랄 것도 없다. 중국 공산당이 천하를 얻은 것은 그래서 어쩌면 어부지리였다. 문화혁명은 그 자체로 역사적 치욕이다. 중국 공산당 역사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는 6·25전쟁에서 북한을 구원한 것이 전부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결과적으로 가장 나빴던 선택이 되고 말았다. 북한은 지금도 중국의 비호를 받고 있다. 중국 지도자들은 누구랄 것 없이 수조원의 뇌물을 받고 CCTV 아나운서를 첩으로 앉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용의 민족 따위의 중화주의 허세는 그만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한국이 딱한 것은 길게 설명할 나위도 없다. 자력으로 일제 식민지에서 벗어난 것도 아니면서 반미 투쟁으로 날밤을 새우는 아큐들이 널려 있다는 것은 정말 기이한 일이다. 망국의 반성은커녕 모든 잘못된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데는 이골이 났다. 지금의 사회 부조리조차 모두 일제 탓으로 떠넘기고 자신의 책임과 과실은 모른 척하는 위선의 나라다. 위안부가 끌려갈 때 이 땅의 남자들은 다들 무엇을 했다는 것인지. 총 들고 싸울 때는 무엇을 하고 지금에야 총을 쏘아 대는 그들이다. 근대사는 왜곡 투성이요 만주벌판 말 달리는 고대사는 모조리 판타지다. 부지런히 일해 근대국가가 되고 경제를 발전시키며 크게 성공했지만 이 모든 땀과 노력을 부정하는 자폐적 사고관행도 만연해 있다. 깊은 사상과 지식이라고는 있어본 적이 없고 그저 되는대로 살아가는 천박성이 지배하는 나라다. 민주주의조차 천민적 민주주의다. 그러니 이 정도에도 감사해야 한다.
일본의 옹졸성도 비교할 곳이 없다. 일본의 근 100년은 집단광기와 조작된 사무라이 신화와 죽음 친화적인 퇴영적 문화로 점철되어 있다. 한국작가 신경숙이 베꼈다고 논란이 많은 저 미시마 유키오의, 저 미치광이적 “천황 폐하 반자이(만세)!” 자살 소동만해도 실로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 아닌가. 청일전쟁 이후 수백만 젊은 청춘들을 애국이라는 미명하에 아시아태평양 전역에서 사실상 굶겨 죽였던 노기(乃木)에서부터 도고(東鄕)를 거쳐 도조(東條)에 이르기까지, 대본영 ‘빠가들’의 어리석음에 대해 일본은 일호의 자기비판도 없다. 원폭보다 남방에서 굶어 죽은 병사들이 더 많았던, 과달카날 등지에서의 그 어리석은 전투도 아닌 전투들을 생각해보라. 그게 군국주의 바보 일본의 진면목이다. 여전히 현인신이 지배하는 미신의 나라요 전근대 국가다. 아베는 이 판국에 군국의 노래를 다시 불러볼 참인가.
무엇 하나 반듯한 것이 없는 동북아의 도토리들이다. 중국은 철 지난 중화의 노래를 불러대고 한국은 오로지 과거사에 머리를 박고 사는 우물 안 개구리다. 일본은 자기 반성이 불가능한 나라다. 그 때문에 타자에 대해 사과할 도덕적 자신감도 생겨나지 않는 것이다. 평화는 인간 정신의 성숙에서 나오는 가치다. 북한까지 저러고 있으니 동북아는 근대화 미성숙 국가군이라는 것인지. 언젠가는 후일담이 되길 바랄 뿐.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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