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국형 포이즌필' 도입해야 한다

입력 2015-06-23 20:31  

"변변한 경영권 방어책 없는 기업들
헤지펀드의 공격에 무방비 상태
차등의결권제 도입도 검토해야"

김정호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온 국민의 눈과 귀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에 쏠려 있다. 소비는 급감하고 사람들이 모이던 장소에는 인적이 없다. 30도를 웃도는 초여름이지만 몸으로 느끼기에는 영락없는 한겨울이다. 이런 와중에 경제계에서는 뜨거운 뉴스가 지면을 달구고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건이다. 두 회사의 합병은 다른 합병사례와는 조금 다르다. 두 회사가 합쳐져 탄생할 새 회사는 한국 최대 기업집단인 삼성의 새로운 사령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양사의 합병과정에 예상 못 한 변수가 생겼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등장이다. 엘리엇은 1 대 0.35의 합병비율에 반대하며 적극적 주주행동주의로 돌아섰다. 다음달 17일로 예정된 주주총회에서 합병이 승인된다 해도 주식매수청구가 과다해 1조5000억원이라는 상한을 초과하면 역시 합병은 무효가 될 가능성도 있다. 삼성은 바빠졌다. KCC에 구원을 청했고 KCC는 백기사가 돼 삼성물산의 자사주를 인수했다. 삼성으로서는 주식매수대금도 확보하고 주주총회에서 의결권 대결 시 우호지분도 확보한 셈이다. 그러나 엘리엇은 삼성물산 주주총회의 결의금지가처분뿐만 아니라 KCC가 인수한 삼성물산의 자사주에 대해 매매의 무효확인 및 의결권행사금지가처분도 시도하고 있다. 법원이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양사 합병이 무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아마도 엘리엇은 경영권 분쟁상황 내지 유사상황을 조성해 주가를 끌어올린 뒤 차익실현을 노리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SK와 소버린, KT&G와 칼 아이칸, 삼성물산과 헤르메스펀드를 상기하면 엘리엇 역시 그런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번 합병건을 놓고 여러 말이 난무하고 있다. 국내 최대 기업집단의 새 사령탑을 탄생시킬 조직재편이기에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이 고조되는 것도 당연하다. 다만 필자는 기업가치의 유지·향상이라는 상법 기본정신을 상기하며 그런 시각에서 이번 합병과 관련된 균형된 시각을 강조하고 싶다.

우리 법제는 경영권 방어 수단에서는 세계 어느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는 취약한 구조로 돼 있다. 이웃나라 일본을 예로 들어보자. 돈가스 소스로 유명한 불독소스사도 한때 미국계 투기자본인 스틸파트너스의 경영권 공격으로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 일본 회사법은 신주예약권이라는 일본식 포이즌필제도를 두고 있다. 불독소스사는 주주총회 결의를 통해 신주예약권을 발동했고 이로써 무난히 경영권을 지켜낼 수 있었다. 미국은 어떤가. 시가총액 세계 2위인 구글은 기업공개 시점부터 래리 페이지나 세르게이 브린 등 창업자 그룹에 복수의결권 주식을 허용했다. 이로써 구글은 안정된 경영권을 바탕으로 시가총액 세계 2위의 기업으로 성장했고 혁신의 대명사가 됐다.

반면 한국에는 경영권 방어에 관한 한 변변한 수단이 없다. 한국형 포이즌필은 오랜 논의에도 불구하고 입법으로 이어지지 못했고 차등의결권제도 없다. 그간 허용되던 순환출자 역시 더 이상은 불가하다. 이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이 취할 수 있는 경영권 방어수단은 자사주 처분이 고작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건은 엄격히 따져 경영권 분쟁상황은 아니다. 삼성물산의 지분 7%를 가진 3대주주 엘리엇이 합병에 반대한 것이어서 경영권 공격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최대 그룹의 정점을 형성할 합병 후 회사를 생각할 때 이번 합병건은 어떤 경영권 분쟁상황보다도 심각하다. 나아가 이번 합병의 결과는 현대자동차그룹이나 SK그룹 등 한국 기업 전반으로 파장이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이번 기회에 한국에서도 경영권 방어법제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김정호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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