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메르스 사태 사과'] 이재용 부회장 "참담한 심정"…'관리실패 책임론' 직접 수습

입력 2015-06-23 20:32  

입원중인 이건희 회장 언급…"환자 가족 불안·고통 이해"
"책임 통감" "끝까지 치료"…두차례 90도로 머리 숙여
부족한 음압병실 확충 등 삼성병원 대대적 쇄신 예고



[ 주용석 기자 ]
23일 오전 11시 삼성전자 서초사옥 기자회견장. 감색 정장에 푸른색 계열 넥타이 차림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들어섰다. 그는 90도로 허리를 굽혀 사죄한 뒤 ‘대국민 사과문’을 읽어 내려갔다. 중간에 “저희 아버지도 1년 넘게 병원에 누워 계신다. 환자분들과 가족분들께서 겪으신 불안과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있다”고 말할 때는 잠시 목이 메기도 했다. 그는 사과문을 모두 읽은 뒤에도 90도로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확산으로 불거진 ‘삼성 책임론’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삼성의 실질적 리더인 이 부회장이 위기관리의 전면에 나섰다는 의미도 있다.

○이재용, 위기관리 전면에

삼성은 그동안 메르스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지난달 중순 이후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확산?진원지가 됐지만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의 한 간부는 국회에서 ‘삼성이 뚫린 것 아니냐’는 질문에 “국가가 뚫린 것”이라고 답해 여론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그룹 차원에서도 이렇다 할 초기 대응책을 내놓지 못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간파하지 못해 안일하게 대응하는 바람에 삼성에 대한 불신을 자초했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여기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반대하는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관리의 삼성이 관리에 실패했다’, ‘이건희 회장이라면 이렇게 대응하지 않았을 것’이란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는 표면적으로는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 자격으로 이뤄졌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은 삼성서울병원을 운영하는 재단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31일부터 이 회장 후임으로 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자라는 점에서 이날 사과는 사실상 ‘삼성 총수’의 대국민 사과 성격을 띠고 있다. 이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삼성 오너 일가로서는 2008년 4월22일 ‘삼성 특검’으로 이 회장이 사과문을 발표한 지 7년여 만이다.

○그룹 차원의 대대적 쇄신 예고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은 ‘조건 없는 사과’다. 이 부회장은 “국민 여러분의 기대와 신뢰에 미치지 못했다. 제 자신이 참담한 심정이다.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해 이번 사태에 대해 전혀 토를 달지 않고 ‘100% 책임지겠다’는 태도를 나타냈다. 그러면서도 한 달 이상 밤낮없이 치료에 헌신하는 삼성서울병원 의료진에게 격려와 성원을 보내달라고 부탁하는 ‘배려의 리더십’을 보였다.

또 다른 한 축은 ‘재발 방지책 마련’이다. 구체적으로 응급실 진료환경 개선, 부족한 음압병실(감염 방지시설을 갖춘 병실) 확충, 감염 예방 백신 및 치료제 개발 지원 등이다.

이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함에 따라 조만간 그룹 차원에서 대대적 쇄신책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 부회장도 “사태가 수습되는 대로 병원을 대대적으로 혁신하겠다”며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철저히 조사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삼성서울병원에 대해 그룹 차원에서 경영진단(감사)을 벌이고 책임자를 인사조치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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