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택림 전남대학교병원장이 고관절 수술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하고 있다. / 전남대학교병원 제공 |
<p>"광주U대회를 앞두고 메르스 때문에 비상사태 상황입니다. 하지만, 그리 큰 걱정을 안 하셔도 됩니다. 전남대병원이 광주지역에선 유일하게 완벽한 국가지정 격리병원이자 보건복지부의 국민안심병원으로 지정돼 메르스 퇴치와 예방에 앞장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겠습니다."</p>
<p>광주에서 세계적 대회가 열리는 만큼 긴장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필 전염병이 기승을 부리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메르스 예방과 방역에 최선을 다하고 있어 안심해도 좋을 것 같다.</p>
<p>그는 고관절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권위자다. 고관절은 골반과 대퇴골을 잇는 관절로 엉덩관절(hip joint)이라고도 한다. 윤 원장은 고관절 관련 미국특허 등 특허를 40여 개 보유하고 있다. 대표적인 특허는 '근육보존 인공고관절 전치환술(두 부위 미니절개에 의한 인공고관절 전치환술)'이다. 기존 인공관절을 끼워 넣는 수술은 15~20cm 정도 관절 부위를 절개해야 하기 때문에 주변 근육을 잘라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기존 수술법과는 달리 5~7cm 정도 두 군데 미니 절개하는 수술 방법을 사용한다. 주변 중요 부위의 근육을 보호하는 방법이다. 이 때문에 환자들은 수술 후 회복이 빨라 바로 걸을 수 있다. 지금까지 고관절 수술을 1만여 건 했다. 아마 세계 최고 기록일 것으로 추측된다. 이는 고관절 수술 분야 가장 많은 수술을 자랑하는 일본 의사보다 실제 2~3배 정도 많은 수치다.</p>
<p>그만의 독특한 수술법 때문에 전국은 물론 세계 곳곳에서 환자들이 몰려들고 있다. 고관절 수술이 어렵거나 다른 의사들이 치료하지 못하는 것을 '그만의 맞춤법'으로 수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세계 각지에서 온 의사들에게 기술을 전수해주고 있다. 현재 그의 뛰어난 수술법을 배우기 위해 인도는 물론 아프리카에서까지 한국을 방문, 의료 기술을 배우고 있다. 1년에 3~4회 외국 의사들과 함께 2박3일 동안 수술을 진행한다. 그는 외국에서도 수술을 한다.</p>
<p>윤 원장은 처음에 '시골 촌놈' 취급을 받았다. 지방인 광주에 있다 보니 지역민들도 쉽게 그의 실력에 믿음이 가지 않았는지 모른다. 이 때문에 그는 자신을 알리는 홍보수단으로 홈페이지를 구축하기로 결심한다. 인터넷은커녕 홈페이지도 거의 없던 1997년 시절이었다. 홈페이지 구축 기술자도 없었다. 그는 동영상 강의를 듣고 직접 만들었다. 아마 일부는 '의사가 별것 다 하네'라고 비아냥거렸을 수도 있다. 엉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p>
<p>그러나 그는 그때부터 환자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알았다. 홈페이지 게시판에 환자들이 질문하면 답변하는 식으로 자신의 의료기술을 알렸다. 이후 그를 찾는 환자들이 꾸준히 늘었다. 현재의 최고 '명의'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남들이 하지 않은 일을 묵묵히 실천했기 때문이다.</p>
<p>"바둑을 두면 상대방이 하수인지 고수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사들은 누가 고수인지 알기가 힘들죠. 그래서 저는 10개의 수술 사진을 환자들과 의사들에게 보여주면 누가 고수인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제가 홈페이지를 만든 이유입니다. 이후 환자들과 소통하다보니 서울에서 내려오는 환자가 있는가 하면, 광주·전남 지역 환자들도 저를 신뢰하고 병원을 찾아주었습니다. 아시아, 아프리카, 러시아, 호주에서도 환자가 찾아왔습니다."</p>
<p>그는 국제고관절학회(International Hip Society) 정회원이다. 이 학회는 현재 정회원이 전 세계 岵막?약 50명에 불과하고 이 가운데 아시아 회원은 약 10명 정도이다. 가입 절차가 매우 엄격해 고관절 분야의 전문 연구자들이 꼭 들어가고 싶어 하는 학회다.</p>
<p>지금은 병원장 하랴, 메르스 퇴치하랴, 수술하랴 보통 바쁜 몸이 아니다. 홈페이지 관리도 잘 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홈페이지 게시판에 환자들이 올린 문의사항은 즉각 답변해준다. 아무튼 그만의 끊임없는 노력과 선견지명이 없었다면, 오늘날 고관절 수술 분야에서 세계 1인자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끊임없는 노력과 실력으로 전국 곳곳, 세계 각지에서 그의 이름이 알려져 이제는 세계적 권위자로 자리매김 됐다. 현재도 병원장을 하면서 1주일에 2번 꼭 수술을 한다. 다른 병원장들은 대개 진료는 않고 행정업무에만 치중하는 편이다. 그의 일 욕심이 많음을 보여준다.</p>
<p>그의 일 욕심은 환자들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나타난다. 수술 받은 환자가 원할 경우 핸드폰 번호가 적혀있는 명함을 건넨다. 언제든지 필요할 때 직접 연락을 주라는 의미이다. 수술 후 불편한 사항이 있으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말고 바로 연락하라는 것이다. 심지어는 새벽에도 환자로부터 연락을 받은 일도 있다고 전했다.</p>
<p>윤 원장은 수술과 관련해 한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그가 40대 초반 때 고관절 수술 세계적 권위자인 미국 토마스 제퍼슨 대학의 로스만 교수와 한국에서 수술을 함께 할 기회가 있었다. 젊은 교수와 세계적 권위자가 함께 한 수술이었기 때문에 그는 당연히 보조자 역할에 머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로스만 교수가 인공관절을 너무 길게 잘라 미처 다리 안에 끼어 넣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 때 구원투수(?)로 나선 윤 교수가 침착하게 인공관절을 맞춰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쳤다. 고관절 수술 분야 세계적 대가를 보조자로 활용했던 셈이다. 이후 로스만 교수는 윤 교수를 마이선(내 아들)으로 부르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 딱 들어맞는 말이다.</p>
<p>"로스만 교수가 '내일 청와대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다. 김 대통령이 미국 망명 시절 고관절 수술과 관련해 나와 상담을 했던 적이 있다. 만나게 되면 수술은 당신이 잘 하니 추천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하필 남북 간 중요한 사건이 터지면서 로스만 교수가 김 대통령을 만나지 못하고 미국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이후 김 대통령은 수술하지 않고 고관절 고통을 줄이기 위해 진통제를 계속 먹어야 했습니다. 그 결과 간과 신장에 무리가 와 결국 신장 투석을 하다 건강이 악화되지 않으셨나 생각됩니다. 그 때 대통령께서 수술을 하셨다면 현재까지도 살아 계셨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p>
<p>윤 원장은 교수를 그만두면 병원 매니지먼트(경영)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병원 경영에 갈수록 흥미를 느낀다. 향후 지역민들을 위해 더 봉사하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중국어, 러시아어를 공부하면서 대한민국의 의료를 세계로 수출하고 싶은 욕망도 있다.</p>
<p>"저희 집사람이 저에게 말합니다. 당신이 개업했으면 엄청난 돈을 벌었을 건데….하지만 저는 현재가 좋습니다. 우리 병원을 세계적으로 알려 국제적 의료기관으로 도약하도록 돕는 것이지요. 보통 중·노년이 되면 육체적 기능이 60~70% 떨어지는데, 뇌는 90% 이상 남아 있습니다. 제가 아는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습니다. 민간외교관처럼 우리의 耳置?의료기술과 시스템을 후진국에 전수하는 일도 계속 할 계획입니다."</p>
<p>김연욱 마이스터연구소 소장</p>
< 한경닷컴 정책뉴스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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