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연평해전

입력 2015-06-26 20:36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참수리 고속정을 지휘하던 정장 윤영하 대위가 순식간에 쓰러졌다. 부정장 이희완 중위가 총상으로 한쪽 종아리를 잃은 상태에서 지휘를 맡았다. 옆에서 불길이 솟았다. 피투성이가 된 채 키를 붙잡고 버티던 한상국 하사가 또 총에 맞았다. M60 기관총으로 응사하던 서후원 하사가 푹 고꾸라졌다. 벌컨포로 대응하던 황도현 하사도 전사했다.’

2년 전 칼럼 ‘NLL과 연평해전’의 눈물겨운 대목을 다시 읽는다. 진급을 이틀 앞둔 한상국 하사는 신혼 6개월의 새신랑이었다. 그는 최후의 순간까지 키를 놓지 않았다. 침몰한 배와 함께 40여일 후 발견됐을 때에도 키를 꼭 붙잡고 있었다. 불과 30여분 만에 우리 해군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서 “앞으로 전쟁은 없을 것”이라고 호언한 지 2년, 남북 화해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고 자랑한 지 2년 만의 일이었다.

안타까운 사연은 두고두고 국민의 마음을 아리게 했다. 영화 제작을 결심한 김학순 감독은 더 그랬다. 실전을 다루는 전쟁영화이기 때문에 제작비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마침내 크라우드펀딩(불특정 다수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것)으로 영화를 완성하기까지 6년이 걸렸다. 총제작비 80억원 중 20억원은 국민이 보탰다. 펀딩 참여자 7000여명 등 후원자가 6만명이 넘었다.

촬영 과정도 어려웠다. 2013년 시작하자마자 제작비 때문에 주저앉았다. 지난해 재개했으나 세월호 때문에 또 지연됐다. 이 과정에서 먼저 캐스팅했던 배우들이 바뀌고 투자사까지 교체되는 곡절을 겪었다. 3차에 걸친 국민모금 끝에 영화는 완성했지만, 6월10일로 예정했던 개봉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때문에 또 연기해야 했다. 결국 6·25를 하루 앞두고야 선보일 수 있었다.

다행히 첫날부터 관객 15만여명으로 1위를 차지했다. 이튿날엔 17만여명으로 늘었다. 네티즌의 호평도 줄을 이었다. 투자사들의 표정 역시 환해졌다. 30억원을 투자한 기업은행은 ‘명량’(1700만명) ‘국제시장’(1400만명)에 이어 3연타석 홈런까지 기대하고 있다. 문화콘텐츠금융부까지 신설하며 전문 지식과 노하우를 축적한 결과여서 더욱 눈길을 끈다.

더 빛나는 흥행 주인공은 국민이다. 차비와 간식비를 아낀 학생들의 저금통부터 자식 잃은 노부부의 눈물 젖은 쌈짓돈까지 함께 맺은 결실이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성급하게 일어서지 말기를 바란다. 후원자 7000여명의 이름을 담은 크레딧이 11분 동안 이어진다.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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