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폰트 재능기부' 석금호 산돌커뮤니케이션 대표 "한글서체 일본 독점에 충격, 창업 나섰죠"

입력 2015-06-26 21:29  

3년간 일 없어 라면으로 버텨
PC등장으로 폰트 중요성 '부각'
비영리단체에 글꼴 무상 제공



[ 이미아 기자 ] “폰트(글씨체) 디자인은 보통 사람들에겐 매우 낯선 분야죠. 하지만 우린 언제나 폰트 속에서 살아갑니다. 스마트폰이든 PC든 책이든 폰트를 안 쓰는 게 없죠.”

국내 최초로 설립된 폰트 디자인 기업 산돌커뮤니케이션의 석금호 대표(사진)는 최근 서울 명륜동 사무실에서 한 인터뷰에서 이같이 설명했다. 1984년 설립된 산돌커뮤니케이션은 마이크로소프트(MS) 워드의 ‘맑은고딕체’와 애플 아이폰의 ‘산돌고딕네오체’, 국내 포털사이트 1위 네이버의 ‘나눔고딕체’ 등 600개 가까운 한글 폰트를 만들었다. 삼성과 LG, 현대 등 국내 대기업에서 사용하는 전용서체 및 본문서체도 산돌의 작품이다.

석 대표는 “한글은 나의 정체성 그 자체”라며 “언어가 소멸될 날까지 폰트는 존재하기에, 한글 폰트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더욱 자랑스럽다”고 강조했다.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출신인 그는 1978년부터 6년간 리더스 다이제스트 한국판의 아트디렉터로 일했다. 첫 직장에서 인쇄 과정을 지켜본 그는 충격에 빠졌다.

“내 나라 글자인 한글을 인쇄하는 기계를 일본에서 모두 수입해야 한다는 게 어이가 없었죠. 게다가 그 당시 쓰이던 ‘굴림체’는 일본어 가타가나용으로 개발된 ‘나루체’를 한글용으로 변형한 것이었어요.”

한글 고유의 폰트 개발을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홀로 창업했다. 국내에선 타이포그래피(인쇄의 문자 배열) 개념조차 제대로 정립이 안 됐을 시기였다. 일이 들어오지 않아 3년간 세 끼 모두 라면으로 때우며 버텼다. 틈틈이 미국, 일본 등에서 나온 타이포그래피와 폰트 개발 서적을 탐독했다.

석 대표를 살린 건 PC의 등장이었다. 특히 1990년대 후반부터 국내 대기업들이 자사를 상징하는 독자적 서체를 마케팅에 쓰기 시작했고, 2000년대 들어 스마트폰 및 전용 애플리케이션(앱)이 쏟아지면서 한글 폰트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석 대표는 “한글은 폰트 국제규격인 ‘유니코드’ 기준으로 1만1172자를 만들어야 한다”며 “초성과 중성, 종성이 어떤 형태로 결합하느냐에 따라 디자인을 일일이 다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영어를 비롯한 다른 문자에 비해 제작 과정이 복잡해 그만큼 정교한 기술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석 대표는 최근 한글 홍보와 폰트 디자인 재능기부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2009년 경기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에 한글체험관 ‘한글틔움’을 열었고, 국내 유적지 한글 안내서 제작에도 참여해 왔다. 지난 11일엔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약 1억원 가치의 폰트 440여종을 무상 제공하고, ‘산돌-초록우산체’를 개발한다는 내용의 재능기부 협敾?맺었다.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의 근무 여건이 쾌적해야 한다”는 지론도 실천하고 있다. 현재 직원 45명인 산돌은 지난 4월부터 근무 시간을 종전보다 2시간 줄인 집중근무제를 실시, 직원들의 자유시간을 늘렸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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