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등장으로 폰트 중요성 '부각'
비영리단체에 글꼴 무상 제공
[ 이미아 기자 ] “폰트(글씨체) 디자인은 보통 사람들에겐 매우 낯선 분야죠. 하지만 우린 언제나 폰트 속에서 살아갑니다. 스마트폰이든 PC든 책이든 폰트를 안 쓰는 게 없죠.”
국내 최초로 설립된 폰트 디자인 기업 산돌커뮤니케이션의 석금호 대표(사진)는 최근 서울 명륜동 사무실에서 한 인터뷰에서 이같이 설명했다. 1984년 설립된 산돌커뮤니케이션은 마이크로소프트(MS) 워드의 ‘맑은고딕체’와 애플 아이폰의 ‘산돌고딕네오체’, 국내 포털사이트 1위 네이버의 ‘나눔고딕체’ 등 600개 가까운 한글 폰트를 만들었다. 삼성과 LG, 현대 등 국내 대기업에서 사용하는 전용서체 및 본문서체도 산돌의 작품이다.
석 대표는 “한글은 나의 정체성 그 자체”라며 “언어가 소멸될 날까지 폰트는 존재하기에, 한글 폰트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더욱 자랑스럽다”고 강조했다.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출신인 그는 1978년부터 6년간 리더스 다이제스트 한국판의 아트디렉터로 일했다. 첫 직장에서 인쇄 과정을 지켜본 그는 충격에 빠졌다.
“내 나라 글자인 한글을 인쇄하는 기계를 일본에서 모두 수입해야 한다는 게 어이가 없었죠. 게다가 그 당시 쓰이던 ‘굴림체’는 일본어 가타가나용으로 개발된 ‘나루체’를 한글용으로 변형한 것이었어요.”
한글 고유의 폰트 개발을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홀로 창업했다. 국내에선 타이포그래피(인쇄의 문자 배열) 개념조차 제대로 정립이 안 됐을 시기였다. 일이 들어오지 않아 3년간 세 끼 모두 라면으로 때우며 버텼다. 틈틈이 미국, 일본 등에서 나온 타이포그래피와 폰트 개발 서적을 탐독했다.
석 대표를 살린 건 PC의 등장이었다. 특히 1990년대 후반부터 국내 대기업들이 자사를 상징하는 독자적 서체를 마케팅에 쓰기 시작했고, 2000년대 들어 스마트폰 및 전용 애플리케이션(앱)이 쏟아지면서 한글 폰트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석 대표는 “한글은 폰트 국제규격인 ‘유니코드’ 기준으로 1만1172자를 만들어야 한다”며 “초성과 중성, 종성이 어떤 형태로 결합하느냐에 따라 디자인을 일일이 다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영어를 비롯한 다른 문자에 비해 제작 과정이 복잡해 그만큼 정교한 기술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석 대표는 최근 한글 홍보와 폰트 디자인 재능기부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2009년 경기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에 한글체험관 ‘한글틔움’을 열었고, 국내 유적지 한글 안내서 제작에도 참여해 왔다. 지난 11일엔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약 1억원 가치의 폰트 440여종을 무상 제공하고, ‘산돌-초록우산체’를 개발한다는 내용의 재능기부 협 敾?맺었다.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의 근무 여건이 쾌적해야 한다”는 지론도 실천하고 있다. 현재 직원 45명인 산돌은 지난 4월부터 근무 시간을 종전보다 2시간 줄인 집중근무제를 실시, 직원들의 자유시간을 늘렸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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