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즌·카시오와 '10만분의 1초 경쟁'
[ 임현우 기자 ]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지만 은근히 번거롭게 느껴지는 일들이 있다. 해외 출장이나 여행이 잦은 사람에게는 손목시계 시간을 매번 맞추는 것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현지시간을 자동으로 잡아 ‘띵~’ 바꾸는 휴대폰과 달리, 대부분 손목시계는 아직도 사람의 손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시계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런 불편함도 옛말이 되고 있다. 위성항법장치(GPS) 기술을 결합해 지구 어디에 있든 현지의 정확한 시간을 알아서 맞추는 ‘GPS 워치’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관련 특허가 제일 많고 제품 판매에도 가장 적극적인 곳은 ‘기술 강국’ 일본의 시계회사들이다.
세이코가 내놓은 ‘아스트론 GPS 솔라’ 시리즈는 최근 고급 시계시장에서 가파른 성장을 보인 성공작으로 평가받는다. 내부에 GPS 수신장치를 탑재한 이 시계는 외국에 가서 시간을 조정할 필요가 없다. 버튼을 한 번만 누르면 가장 가까운 위성에서 GPS 신호를 수신받고, 이후 시곗바늘이 스스로 회전해 해당 지역 시간으로 맞춰준다. 배터리를 교체할 필요도 없다. 태양이나 전등의 빛을 동력으로 전환하도록 설계돼 배터리가 아예 들어 있지 않다. 시간의 오차가 ‘10만년에 1초’에 불과할 정도로 정확하다는 설명이다.
이시마루 테루요 세이코 전무는 “2012년 처음 출시한 GPS 솔라 워치의 세계 판매량이 2013년 1만개를 돌파한 데 이어 작년엔 2~3배로 늘었다”며 “회사의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라고 말했다. 핫토리 신지 세이코 회장은 “세이코의 기술력 우위와 더불어 ‘항상 한발 앞서야 한다’는 회사의 비전을 증명해 보인 제품”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시계 시장에 GPS 워치가 본격 등장한 지 여러 해가 지나면서 제품 사양과 디자인은 갈수록 개선되고 있다. 올해 세이코의 GPS 솔라 워치 신상품에는 듀얼타임(모국과 여행국의 시간을 함께 보여주는 기능)이 추가됐고, 티타늄 소재를 도입해 무게도 줄었다. ‘시계의 얼굴’이라 불리는 다이얼(시계판)에 동양적이고 단아한 느낌의 자개(mother-of-pearl)를 활용한 한정판도 나왔다. GPS 수신장치를 돌리는 데 드는 전력 소모량도 해마다 감축돼 시계의 작동 효율 또한 좋아지는 추세다.
같은 일본 브랜드인 시티즌과 카시오 등에서도 동일한 원리의 GPS 시계를 내놓고 있다. 시티즌은 GPS 시계의 수신 속도를 개선해 최단 3초 안에 위성신호를 받을 수 있는 신제품을 출시, 적극적으로 홍보하며 세이코와 ‘자존심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저가 시계에 주력하던 카시오도 GPS 기능을 탑재한 200만원대 고가 시 甕?선보이며 고급화 행보에 나섰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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