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회계감사 딜레마] 가구당 연 1만원 꼴인데…비용에 발목잡힌 아파트 회계감사

입력 2015-07-02 21:33  

시행 첫해부터 삐걱

일부 입주민 '불필요한 규제'로 받아들여
주민 3분의 2 동의 받아 감사 회피 추진
회계사는 '주민들 다툼에 휘말릴까' 우려



[ 하수정/김태호 기자 ]
경남 창원에 있는 300가구 규모의 A아파트. 지난달 외부감사인 선정을 위해 두 차례 입찰을 진행했지만 감사인을 선정하지 못했다. 경쟁입찰에 참여한 지역 회계사들이 당초 A아파트가 예상했던 감사보수 100만원의 두 배가 넘는 가격을 써냈기 때문이다. 요즘 이 아파트는 주민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아 회계감사를 받지 않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도입된 대규모 아파트 단지(300가구 이상)에 대한 외부감사 의무제도가 출발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관리비 비리 척결을 위해 내놓은 정부 대책이 일부 입주민에게 불필요한 규제로 받아들여지고 주민들의 자치공간인 아파트관리소들은 내밀한 살림살이를 외부에 드러내기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주택관리사협회, 전국아파트입주자대표연합회 등 아파트관리소 단체나 입주자 단체들은 올 들어 아파트 회계감사 의무화를 폐지해 달라고 국회나 청와대에 잇따라 진정서를 내고 있다.

이들은 또 “회계사(법인)들이 보수를 지나치게 높게 요구하고 있다”며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이관범 주택관리사협회 사무총장은 “공인회계사회 측에서 100시간이라는 가이드라인을 회계사들에게 내리다 보니 연간 회계보수를 300만원, 400만원씩 부르는 경우가 많다”며 “대형 아파트의 회계장부 등이 국토교통부에 공시되고 있는 상황에서 회계감사 의무화까지 강요하는 것은 지나친 규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감사를 적극 요청하는 주민들도 적지 않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관리비 비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면서 비용을 좀 지급하더라도 외부감사를 정기적으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하느냐, 마느냐, 누구를 선정하느냐 등을 놓고 주민 간 알력이 빚어지는 곳도 상당수”라고 전했다. 실제 지난 5월 경기 성남에 있는 500가구 규모의 B아파트 입주민 회의에선 주민 간 고성이 오가는 소동이 벌어졌다. 일부 주민이 관리사무소와 동대표 측이 선정한 감사인을 못 믿겠으니 재입찰을 해야 한다고 맞섰기 때문이다.

회계사들도 아파트 감사 수임에 부정적이다. 투입 시간과 노력에 비해 수익성이 낮은 데다 자칫 주민 간 다툼에 휘말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소규모 회계사들로 이뤄진 감사반이나 개인 회계사들이 관심을 보이는 정도다. 삼일 삼정 안진 한영 등 4대 대형 회계법인은 물론 중소·중견 회계법인들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있다. 공인회계사회에선 아파트 감사에 투입될 공인회계사 인력이 2000명 이상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실제 나서는 사람들은 200명 안팎으로 파악되고 있다.

사후 제재도 부담이다. 린邕永湧?아파트 측 요구대로 감사보수를 낮추고 감사시간을 줄였다가 부실감사가 되면 직무정지 등 제재를 받을 수 있다.

회계업계에선 적정 아파트 회계감사 보수를 500가구, 감사시간 100시간 기준으로 연 500만~600만원가량으로 추정하고 있다. 가구당 연간 1만원꼴이다. 하지만 실제 시장에서 형성된 평균 계약금액은 190만원이다. 정도진 중앙대 교수는 “가구당 한 달에 1000원, 커피값도 안 되는 가격으로 일정 부분 관리비를 감시할 수 있다면 사회 전체적으로 이득이 아니겠느냐”며 “회계감사를 비용으로 생각하는 주민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수정/김태호 기자 agatha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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