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정쟁뿐인 정치, 무너지는 경제

입력 2015-07-05 20:37  

"메르스까지 덮쳐 지지부진한 경제…정치권은 정쟁과 권력다툼뿐
기업환경 개선·경제살리기는 외면…정치권력 줄여야 경제 살릴 수 있어"

안재욱 < 경희대 교수·경제학 jwan@khu.ac.kr >



한국의 정치, 정말 이대로는 안 된다. 지금의 정치를 보고 있으면 걱정이 앞선다. 국가 경제는 장기 불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바깥 세상은 시시각각 급변하고 있는데 권력 다툼이나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에는 정치 잘못으로 깊게 입은 상처가 한둘이 아니다. 당쟁에 골몰해 외적의 위협에 실질적으로 대비하지 못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었고, 조선 말 정쟁과 세도정치로 국정이 문란해져 일본의 식민지란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때마다 국민들은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다.

지금 한국의 경제 사정이 말이 아니다. 수년째 장기 불황 속에서 많은 국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가 겹쳐 경제 침체가 심화되고 있다. 올해 경제성장이 2%대로 추락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그리고 일본 아베노믹스로 인한 엔저(低)로 우리 기업들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지고 있으며, 중국 기업의 급성장으로 우리 기업들의 설자리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게다가 그리스가 사실상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황에 빠져 있고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의 재정문제로 인해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이 매우 불안한 상황이다. 또 최근 중국 경제의 거품이 꺼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만일 중국 시장의 급락으로 세계 금융시장이 소용돌이에 휘말리면 외국자본 비중이 매우 높은 한국 경제는 그야말로 커다란 혼란을 겪거나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이번에 이런 충격을 받으면 국민들의 어려움은 가중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 정치권은 합심해 경제 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여도 모자랄 판에 정쟁과 권력 다툼에만 온 정신이 팔려 있다. 사실 지금까지 정치권은 말만 앞세웠지 실질적으로 경제 살리기를 외면해왔다. 기업들이 기업환경을 개선해달라고 그렇게 아우성쳐도, 수많은 청년들이 취업을 하지 못해 실의에 빠져 있어도 국회는 정쟁으로 세월을 보냈다. 오히려 기업 때리는 데에만 열중했고, 일자리 창출을 어렵게 하는 정년연장과 같은 ‘경제 죽이기 법안’들만 만들었다.

공무원연금 개혁에 엉뚱하게 국민연금을 연관시키더니 위헌 소지가 있을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민생에 시급하지도 않은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결국 그 일로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고, 청와대와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 간 갈등이 빚어지면서 급기야 여당 내에서 친박·비박으로 나뉘어 연일 다툼을 벌이고 있다. 야당은 야당대로 지난 4월 보궐선거 이후 친노와 비노로 나뉘어 치고받고 있다. 마치 조선시대 사색당파를 보는 듯하다.

왜 이리 한국 정치인들은 국민 생활은 뒷전이고 그토록 정쟁에만 매달리는 것인가. 그것은 한국에서 정치권력이 너무 비대하기 때문이다. ‘한비자’ 오두편에 이런 구절이 있다. ‘옛날에 (요순이) 가벼이 임금 자리를 양보한 것은 고매해서가 아니다. 권세가 적기 때문이다. 오늘날 벼슬자리를 놓고 몹시 다투는 것은 인격이 낮아서가 아니라 그 권세가 크기 때문이다.’

정권을 잡으면 막대한 권한을 갖는다. 그 정부권력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쓸 수 있다. 자신을 지지한 사람들과 집단들에 여러 가지 특혜를 제공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자신의 이익이 증가한다. 자연히 부정부패도 늘어난다.

정치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정치권력을 줄여야 한다. 사실 정치권력의 원천은 국가권력에 있다. 정치권력이 비대한 것은 바로 국가권력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치권력을 줄여 정치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국가권력을 줄여야 한다. 국가권력을 줄이는 헌법 개정이 필요한 이유다.

국가권력이 줄어 정치권력이 줄면 소모적인 정쟁이 사라지고 국민들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으로 지속적인 번영을 누릴 수 있다. 무릇 정치의 근본은 국민들의 삶을 넉넉하게 하는 데 있다. 제발 정쟁에서 벗어나 지금의 경제 침체를 극복하고 정말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일을 좀 해주기 바란다.

안재욱 < 경희대 교수·경제학 jwan@kh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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