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만 저임금 근로자 '일자리 위태'
"영세기업 추가 인건비 부담 2조7천억"
[ 백승현 기자 ]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5580원)보다 8.1%(450원) 오른 6030원(시급)으로 결정됐다. 2008년(8.3%) 이후 8년 만의 최대 인상폭이다. 금액 기준으로는 역대 최고다. 3년 새 24%가 오른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노동계의 손을 들어준 결과다.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은 그렇지 않아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와 그리스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 등 세계경제 후퇴로 어려워진 경제에 상당한 타격을 줄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700여만명으로 추산되는 영세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인건비 상승이라는 ‘직격탄’을 맞게 됐다. 장사가 안 돼 가게문을 닫는 자영업자는 한 해 평균 80여만명이다. 창업에 나섰던 사람 7명 중 1명꼴이다. 일부 자영업자 사이에서는 “최저임금이 이렇게 오르면 가게를 접고 차라리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낫겠다”는 자조까지 나온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번 최저임금 인상으로 30인 미만 영세기업의 추가 인건비 부담액이 2조7000여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경총 관계자는 9일 “최저임금 근 括愍?87.6%가 근무하는 영세 기업과 소상공인의 존립이 위협받고 근로자의 일자리도 불안해질 것”이라며 “최저임금 영향률(새로 적용되는 최저임금에 직접 영향을 받는 근로자 비율)이 18.2%라는 것은 시장경제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최저임금 언저리 수입으로 생활해야 하는 500여만명의 근로자들은 일단 “기대했던 만큼 오르진 않았지만 생활은 다소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이들도 마냥 반기는 분위기만은 아니다. 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으로 사업주들이 일자리를 줄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당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식당, 편의점, PC방 등 영세사업자들은 폐업이나 감원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지난달 29일 소상공인연합회가 소상공인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중 45%는 “최저임금이 6000원이되면 직원 일부를 정리하겠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이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저임금이 이처럼 대폭 인상되는 이유는 최저임금을 ‘적정급여’로 보는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1986년 최저임금법 제정 이후 1988년부터 도입한 최저임금제는 근로자의 최저생계비를 보장해 주자는 취지였다. 2015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1인 최저생계비는 월 61만7281원이다, 최저생계비가 높은 수준은 아니지만, 최저임금법 취지대로 라면 내년도 최저임금(월 126만270원)은 최저생계비의 두 배가 넘는다.
그럼에도 최저임금 논란이 점점 커지는 이유는 최저임금이 당초 취지와는 달리 사실상 모든 기업의 최저 기본급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한 전문가는 “최저임금이 모든 임금을 치받고 있는 구조에서 한 번 인상률이 결정되면 전체 임금은 자연스럽게 올라가게 된다”며 “사실상 500만 저임 근로자가 아닌 1800만 전체 근로자의 임금, 즉 한국 전체 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기준인 셈”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최저임금 영향률은 2001년 2.1%에서 2003년 6.4%, 2015년 14.6%, 내년에는 18.2%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일본은 7.3%, 영국은 5.3%, 미국은 3.9% 수준이다.
최저임금위원회 관계자는 “최저임금이 전체 임금구조를 떠받치고 있는 상황에서 큰 폭으로 인상한다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는 경영 운신의 폭이 좁아지고 근로자들은 고용이 불안해지는 면이 있다”며 “또 다른 측면에서는 ‘저임 자영업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게 최저임금의 ‘불편한 진실’”이라고 말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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