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억유로 국유재산 팔아야
채권단, 실무작업 착수…'브리지론'은 바로 실행
그리스 내부 반발 분위기도…15일 의회 통과 장담 못해
[ 박종서 기자 ]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3일(현지시간) 그리스와 국제 채권단의 구제금융안 합의에 대해 “그리스가 국제 채권단과의 협상에서 ‘백기투항’했다”고 보도했다. 그리스는 채권단으로부터 3년간 최대 860억유로(약 108조3000억원)를 지원받기로 했지만, 애초 요구했던 부채 탕감은 한 푼도 받지 못한 채 지난달 채권단이 제시한 개혁안보다 더 강도 높은 긴축 요구를 받아들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는 독일이 막판 협상 때 새로 요구한 500억유로의 국유재산 매각 조건도 수용했다.
3년간 최대 860억유로 지원키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정상들은 12일 오후 4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가 넘어서까지 17시간 동안 마라톤 회의를 벌여 그리스 구제금융안에 대해 합의를 이끌어냈다. 도날 ?투스크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회의를 마친 뒤 타결 소식을 전하면서 ‘어그릭먼트(aGreekment)’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동의라는 의미의 어그리먼트(agreement)와 그리스인(또는 그리스의)이란 뜻의 그릭(Greek)을 합친 조어다. 투스크 의장은 “그리스의 건설적인 자세가 협상 타결에 큰 도움을 줬다”며 “유럽재정안정화기구(ESM)는 그리스 구제금융과 관련한 실무 작업을 진행하고 유로존 재무장관들이 브리지론 지원 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스는 지난달 30일 연체한 15억유로를 포함해 이달 안에 국제통화기금(IMF)에 20억유로를 갚아야 하고, 20일에는 유럽중앙은행(ECB)에 35억유로를 상환해야 한다. 다음달엔 또 70억유로의 채무를 상환해야 한다. 채권단은 3차 구제금융을 지원하기로 한 만큼 정식 대출이 이뤄지기 전까지 임시로 돈을 빌려주는 브리지론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리스는 EU, ECB, IMF 등 국제 채권단으로부터 추가 구제금융을 약속받아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위기는 벗어났지만 채권단이 요구한 긴축안을 고스란히 수용해야 했다. 그리스는 500억유로의 국유재산을 매각하는 프로그램에 동의했다. 앞으로 연금을 대폭 삭감하고 저소득층에 대한 보조금도 중단해야 한다. 법인세는 26%에서 28%로 올리고 음식점 등에 대한 부가가치세를 13%에서 23%로 인상하기로 했다. 섬 지역에 대한 부가가치세 30% 인하 혜택도 폐지해야 한다. 전력사업 등 국가 소유 공기업은 매각할 계획이다.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한 조치도 취해야 한다.
일부 유로존 국가 의회 통과해야
외신들은 그리스가 이번 협상에서 ‘완패’했다고 풀이했다. 그리스 채권단이 지난달 25일 제시했던 최종 구제금융안을 모두 받아들였고 추가로 500억유로의 국유재산 매각까지 해야 할 상황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리스 정부가 줄기차게 요구했던 부채 탕감은 이뤄지지 않았다. 독일, 핀란드 등이 그렉시트를 감수하더라도 빚을 깎아줄 수 없다고 버텼기 때문이다. 국제 채권단은 상환기간 연장과 이자율 인하 등으로 부채 부담을 낮춰주는 차원에서 논의를 마무리했다.
유로존 정상들은 이번 구제금융을 개시하기 위해서는 그리스 의회가 4개 개혁법안을 15일까지, 2개 법안은 22일까지 통과시켜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15일까지 의회 통과가 필요한 법안은 부가가치세 간소화와 과세 기반 확대, 연금체계의 장기 지속 가능성 개선 조치, 그리스 통계청 법적 독립성 보장, 재정 지출 자동 삭감 등 재정위원회 개혁안 등이다.
WSJ는 “그렉시트 위기를 끝낼 수 있는 기회가 그리스 의회로 넘어갔다”며 “개혁법안 통과를 장담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구제금융이 실행되려면 그리스 외에 독일, 핀란드, 스페인 등 일부 유로존 회원국별 의회 승인이 필요하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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