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국민연금 대리인들의 대리인 문제

입력 2015-07-13 20:42  

"연금의결권이 국민들의 일반 의사와도
증권 투자자들의 선택과도 다른 편향성 보인다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는가"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



대리인 문제는 현대 경영학의 핵심 주제다. ‘주인-대리인’ 갈등은 필연적이고 구조적이어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그 어떤 조직도 효율적으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이 소위 대리인 문제가 강조하는 골자다. 대리인은 민법상 선량한 관리자라고도 할 수 있지만 상법상, 그리고 자본시장법상 허다한 논점들을 동시에 던져주고 있다. 우리가 지배구조 문제라고 말하는 것의 거의 전부도 이 대리인 문제를 지적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관료주의에 대한 비판도 실은 경영학적으로는 대리인 문제요, 치열한 정치적 갈등도 그 본질은 대리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쟁인 것이다. 한국 내 좌익그룹들이 끈질기게 대기업 그룹들을 공격하고 있는 착점도 기업 지배구조다.

흔히 전문가인 대리인과 아마추어인 주인 간의 정보 비대칭, 혹은 비대칭적 정보 때문에 대리인 문제가 발생한다고 교과서들은 설명하고 있다. 기업 최고경영자(CEO)와 주주의 불일치 혹은 대립 갈등이 그렇다는 것이다. 국회의원과 선거구민의 관계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엄밀하게 보면 정보 비대칭이라기보다는 권한과 책임의 불일치가 현대적 대리인 문제의 근원이다. 국회의원의 권한은 막강한데 전혀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좌절감을 맛보는 것도 ‘권한-책임의 불일치’ 문제 아니던가. 삼성물산과 엘리엇 분쟁 과정에서 비상한 주목을 받는 국민연금과 그 산하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도 같은 질문을 받고 있다. 국민연금 산하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의 그 어떤 위원도 자신의 결정에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야 하는 것은 당혹스러운 일이다. 아마추어 시민운동도 아니고 정치도 아니면서 무책임의 뒤로 몸을 숨긴다는 것은 정당한 지배구조라고 할 수 없다.

지난달 26일 주총에서 통과된 SK(주)와 SK C&C의 합병건은 가장 최근의 사례다. 기업 합병은 최고 단계의 경영 의사결정이요, 원천적 사업 재편이다. 놀랍게도 국민연금 산하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는 SK그룹의 합병에 반대했다. 이 방침에 따라 국민연금도 주총에서 반대표를 던졌다. 그러나 표결 결과 이 합병건은 출석주주의 무려 86.9% 압도적인 찬성표를 얻어 통과됐다. 몇 년 전에는 현대자동차 주총에서 정몽구 회장의 이사 선임안에 대해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당시 국민연금은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정몽구 이사 선임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그러나 결과는 연금 측의 패배였다. 정몽구 회장의 경영 능력은, IMF 외환위기 직후 곧 망한다던 현대자동차를 오늘날 세계 수준의 자동차회사로 키워낸 사례만 봐도 명확한 것이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의 결정이 국민의 일반적 의사와 다르고 심지어 증권투자자들의 상식과도 다른 방향으로 편향적으로 내달리고 있다. 일관된 것이라고는 반(反)재벌 정서에 편집증적으로 집착하고 있다는 정도다. 문제는 사활적 주총 대결에서 패배하고도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패배의 책임을 지는 것은 대리인으로서는 당연한 자세다. 허공에 대고 돈키호테처럼 제멋대로 찔러나 보자는 식의 의결권을 누가 국민연금에, 그리고 전문위원회에 위임했는지 궁금하다. 또 그들은 자신의 오도된 가치관이 아니라면 과연 무엇을 기준으로 찬반여부를 결정했는지도 궁금하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자산이다. 만일 국민연금 운용위원회라는 관리자가, 그리고 그 관리자의 대리인에 불과한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가 무언가를 결정해야 한다면 먼저 주인인 연금 가입자들의 의견을 물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국민연금의 주인은 연금 가입자다. 그러나 연금 가입자 중 누구도, 그리고 단 한 번도 연금 측으로부터 더구나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라는 곳으로부터 이번 주총 안건에 대해 어떻게 할까요라는 질문을 받아본 적도, 가입자 총회 소집통보서도 받아 본 적이 없다. 대체 전문위원회는 누구로부터 대리인으로 위임됐는가. 기업에 대한 적개심에 사로잡힌 자들의 비정상적 조언을 과연 주인들은 어떻게 수용해야 하나.

아는 것도 없이 거들먹거리기나 하는 것이 대리인이라고 갈파한 사람은 애덤 스미스였다. 국민연금 주변을 서성대는 대리인들이 일으키는 진짜 대리인 문제는 누가 해결하나.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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