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시행령 개정 권한을 가지려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까지 간 국회법 개정 문제로 시끄러운 상황에서 고용노동부가 시행령 격인 가이드라인을 냈다가 무슨 봉변을 당하려고 선뜻 나서겠나.”
한 노동 전문가가 ‘임금피크제 가이드라인이 늦어지는 이유’라고 기자에게 한 말이다. 국회법 갈등의 여진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자칫 총대를 멨다가 곤욕을 치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기권 고용부 장관이 지난 6월 말까지 내놓겠다던 ‘임금피크제 가이드라인’은 아직 소식이 없다. 지난 4월 노동시장 구조 개혁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이 결렬된 뒤 이 장관은 “노동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며 6월 말 임금피크제 가이드라인을 내놓는 등 정부 차원의 노동 개혁을 진행하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 5월 말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공청회가 노동계의 실력 저지로 무산됐고,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18년 만에 총파업을 선언하는 등 노동계가 강력 반발하면서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성과라면 정부가 ‘경영평가’라는 목줄을 쥐고 있는 공공기관에 대해서만 내년부터 전면 도입하겠다고 밝힌 정도다.
고용부는 가이드라인 대신 이달 초 1주일 간격으로 두 건의 보도자료를 냈다. 하나는 ‘30대 그룹 계열사 절반, 임금피크제 도입’, 또 하나는 ‘근로자 73%, 임금피크제 도입 찬성’이라는 내용이었다. 최대한 노사 의견을 수렴하되 어느 정도의 반대가 있더라도 임금피크제를 관철시키겠다던 고용부의 의기(意氣)는 언제부턴가 자취를 감췄다.
16일은 이 장관이 취임한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다. 노·사·정 대화 등으로 역대 어느 장관보다 바쁜 일정을 보낸 이 장관이지만, 취임 1주년 기념 인터뷰 요청도 사양하고 조용히 지나가려는 것도 정치권의 어수선한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임금피크제가 노동 개혁의 최종 목표가 아니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임금피크제를 시작으로 임금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정년연장과 함께 고용시장이 더 불안해질 것은 자명하다. 그렇지 않아도 답보 상태인 노동 개혁이 정치권 갈등에 출발도 못하고 있다. 눈치만 보는 고용부도 실망스럽다.
백승현 지식사회부 기자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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