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별명은 '해커'
고위공직자 父 덕에 돈 걱정 없이 자라…대학 전산실 문제생기면 컴퓨터 해결사
주식 '붐' 땐 실시간 주가확인 SW개발
끊임없이 '표절' 논란 시달려
이스라엘 스타트업 서비스 모방했다가 표절 손해배상금 내느라 고전
2004년 홍콩상장 후 시가총액 150조원
베끼는 것은 나쁜 게 아니다
소비자 입맛 맞는 서비스 진화가 '창조'…영상통화 가능한 위챗 사용자 6억명
화려한 마윈과 다른 '조용한 리더십'
[ 나수지 기자 ]
다음카카오, 네이버, 엔씨소프트 등 한국의 대표적인 정보기술(IT) 기업이 하나로 합쳐지면 어떻게 될까. 인터넷과 모바일 시장에서의 영향력이 막강할 것이다. 중국의 텐센트가 그렇다. 카카오톡의 중국판인 모바일 메신저 ‘위챗’, 사용자만 6억명에 달하는 컴퓨터 메신저 ‘QQ’를 가지고 있다. 메신저 사용자들에 대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게임서비스를 제공해 세계 1위 게임기업 자리까지 꿰찼다. 스마트폰 결제 서비스인 ‘텐페이’도 소유해 중국 핀테크(금융+기술) 분야의 선두주자로 평가받 쨈? 리그오브레전드를 만든 게임회사 라이엇게임즈를 비롯해 액티비전블리자드, 넷마블 등 게임회사에 수조원을 투자한 대주주기도 하다. 수많은 IT 기업이 텐센트의 투자를 받기 위해 애쓴다.
텐센트를 지금의 위치까지 키운 주인공은 마화텅(馬化騰) 최고경영자(CEO·44)다. 중국인들은 그에게 ‘만만저우(慢慢走·천천히 걸어가는 사람)’라는 별명을 붙였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목표 달성을 위해 조용하고 천천히 움직인다는 의미에서다. 세계를 누비며 각국 정상과 만나고 영어 연설로 수려한 언변을 뽐내는 알리바바의 마윈과는 다르다. 이런 까닭에 마화텅은 중국 밖에서는 비교적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빨리 베껴 중국화하는 게 창조”라는 신념으로 텐센트를 시가총액 150조원에 달하는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10만위안 주식 투자해 70만위안으로 불려
마화텅의 아버지는 고위공직자였다. 중국 교통부 부국장을 지내고 해운회사 사장으로도 일했다. 마화텅이 학교에 다니는 동안 돈이 부족한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집안의 도움으로 기업을 일으킨 건 아니었다. 전형적인 개발자 출신 IT 기업 창업가의 길을 걸었다.
1971년생인 그는 중국 선전대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했다. 대학 시절 별명은 해커. 386 컴퓨터를 쓰던 초창기였지만 일찍 컴퓨터에 눈을 떴다. 학교 전산실 직원들도 문제가 생기면 마화텅을 찾았다. 그가 전공을 살려 컴퓨터사업에 뛰어든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1993년 대학을 졸업한 뒤 무선호출기(삐삐)의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인 선전룬쉰(潤迅)에 개발자로 취직했다.
그 시 藪?첫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중국엔 주식시장 붐이 일었다. 자고 일어나면 오르는 주가에 너나 할 것 없이 주식에 뛰어들었다. 월급으로 1100위안(약 179달러)을 받던 마화텅도 주식에 흥미가 생겼다. 10만위안을 투자해 70만위안을 벌어들일 정도로 수완이 좋았다. ‘실시간으로 주가를 확인할 수 있는 장치가 있다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이때 떠올랐다. ‘구바(股覇)카드’라는 이름의 컴퓨터용 장치를 동문들과 함께 개발했다. 유명 전자상가에서 동이 날 정도로 호응이 뜨거웠다.
구바카드의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은 마화텅은 1998년 자신의 회사를 세우겠다고 마음먹었다. 선전대에서 함께 공부한 한 살 아래 친구인 장즈동(張志東)과 ‘텐센트’를 설립했다. 당시 해외에서는 이스라엘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 개발한 ICQ라는 메신저 서비스가 1200만명 가입자를 확보하며 인기를 얻고 있었다. 마화텅은 ICQ를 모방한 QICQ를 1999년 2월 선보였다. 텐센트의 중국명인 텅쉰(騰訊)도 메신저와 관련이 있다. 텅(騰)은 마화텅을, 쉰(訊)은 메시지를 의미한다. 영문명인 텐센트(10cent)는 당시 휴대폰 메시지 가격이 한 통에 10센트였던 데서 따왔다.
표절 분쟁에 휘말리며 난관
QICQ는 출시 두 달 만에 가입자 20만명을 모았다. 하지만 성공이라 평가하기엔 부족했다. 가입자 수가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정체됐다. 마화텅은 과감하게 OICQ를 무료 다운로드 서비스로 전환했다. 사용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OICQ를 내려받았다. 서비스를 시작한 지 9개월 만에 사용자가 100만명을 넘어섰다. 2001년에는 5000만명이 사용하는 인스턴트 메신저로 성장했다.
성공은 오래가지 못했다. 텐센트가 창업한 이듬해 ICQ의 운영사인 아메리카온라인(AOL)이 OICQ가 자신들의 서비스를 표절했다는 소송을 제기했다. QICQ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말 것과 표절에 대한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저작권 인식이 전무했던 텐센트는 부랴부랴 대응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QICQ의 이름을 QQ로 바꾸고 손해배상금도 지급했다. 기술 개발을 위해 투자도 해야 하고 이용자 수가 급증해 서버를 확충해야 했지만 배상금을 내느라 자금이 부족했다.
마화텅은 6개 버전에 20쪽이 넘는 사업계획서를 들고 국내외를 직접 누볐다. 텐센트에 관심을 보인 건 미국의 인터내셔널데이터그룹(IDG)과 홍콩 통신업체 PCCW였다. 그들은 텐센트에 400만달러를 투자했다. 이를 발판으로 2004년 6월 텐센트는 홍콩 증권거래소에 상장됐다. 상장 당시 1조원가량이었던 시가총액은 10년 만에 150조원으로 150배 증가했다.
소비자 입맛 맞춰 서비스 바꿔
한 차례 난관을 겪었지만 마화텅은 기존의 ‘패스트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을 고수했다. 2010년 모바일 메신저인 위챗을 선보였다. 카카오톡처럼 그룹 채팅, 음성통화를 할 수 있고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낼 수 있다. 영상통화도 된다. 카카오톡, 미국의 와츠앱 등이 인기를 끌자 한발 늦게 내놓은 서비스였다.
마화텅의 전략은 위챗에서도 먹혔다. 지난해 이용자 수가 4억7000만명을 넘었다. 4억명을 돌파한 네이버의 라인이나 3억명대 이용자를 보유한 미국 와츠앱보다 가입자가 많다. 마화텅은 모방을 통해 발전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베끼는 것은 나쁜 게 아니다”며 “모방을 하려는 대상과 모방 시기를 잘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모방을 바탕으로 새로운 서비스를 추가하는 원칙은 위챗에도 반영됐다. 위치기반서비스를 이용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거리순으로 보여주는 ‘룩 어라운드’, 스마트폰을 흔들면 같은 시간에 흔든 사람과 연결되는 ‘셰이크’ 등 독특한 기능을 담았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리더십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 마화텅은 텐센트의 성공에도 겸손한 모습을 보인다. “우리집은 아주 보통의 가정이다. 특별한 게 없다. 그저 집 방이 좀 커진 것 말곤 별다른 변화는 없다”
나수지 기자 suj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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