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FT 품은 日 닛케이] 닛케이 "일본어 벽에 갇힌 시장 넘겠다"…FT 인수로 글로벌화 베팅

입력 2015-07-24 21:34   수정 2015-07-26 14:06

아베노믹스로 日기업 실적 호황
미디어업계로 M&A 확산
日부총리 "독자들에게 좋은 일"

디지털·글로벌화 추진
닛케이 전략 탄력받아
"신문업계 통합 가속화 예고"



[ 서정환/이심기 기자 ] 23일 오후 10시30분.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인터넷판은 긴급속보로 ‘닛케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인수’ 기사를 내보냈다. 그 시간 FT의 인터넷판 톱기사 제목은 ‘독일 악셀 슈프링어, FT 인수하나’였다. 닛케이의 FT 인수 사실이 확인되자 FT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예상 못 한 소식에 영국은 물론 해외 미디어업계도 술렁였다.

영국의 한 방송사 앵커는 닛케이의 FT 인수 소식을 전하며 “일본 기업의 미국 뉴욕 록펠러센터 빌딩 인수가 연상된다”고 말했다. 1989년 일본 미쓰비시 계열 부동산회사는 ‘맨해튼의 심장’이라 불리는 록펠러센터를 14억달러에 사들여 미국의 자존심을 흔들었다. 그로부터 26년 만에 미디어업계에서도 일본 대표 경제매체인 닛케이가 언어와 문화가 전혀 다른 127년 전통의 영국 매체 FT를 인수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5주 만에 신문사 최대 M&A 결정

닛케이는 영국 교육·미디어그룹인 피어슨으로부터 FT를 8억4400만파운드(약 1조50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신문사의 기업 인수합병(M&A) 중 역대 최고 금액이다. 2013년 제프 베저스 아마존 창업주가 워싱턴포스트(WP)를 인수하면서 지급한 2억5000만달러보다 5배나 많다. 이번 인수대상에서 FT 런던 본사 건물과 주간 이코노미스트 지분은 빠졌다.

뉴욕타임스(NYT)는 독일 최대 미디어그룹 악셀 슈프링어가 1년여 동안 끌어온 협상을 닛케이는 단 5주 만에 끝냈다며 전격적인 인수 분위기를 전했다. 이번 인수는 일본 안팎에서도 ‘깜짝 놀랄 만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일본어라는 벽이 만들어내는 좁은 시장에서 점유율 싸움을 해 온 경쟁사들이 충격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닛케이가 이처럼 과감한 베팅에 나선 것은 글로벌화의 필요성과 더불어 살아나는 일본 경제에 대한 자신감이 배경에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총리 경제정책)에 힘입어 일본 상장사들은 최근 2년 연속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해외 기업 사냥에 나선 결과, 올 상반기 일본 기업의 해외 M&A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60% 증가한 약 5조6000억엔으로 불어났다. 24일에도 일본 메이지야스다생명이 미국 생명보험사 스탠코프파이낸셜그룹을 6246억엔에 인수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런 분위기가 일반 기업에서 미디어기업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해석이다. 일본 거품경제 붕괴 직전인 1989년 소니가 미국 콜롬비아픽처스엔터테인먼트를 사들이고 2004년에는 MGM을 약 50억달러에 인수하는 등 일본 미디어기업이 해외 M&A를 한 사례가 처음은 아니지만 이번엔 언론매체가 해외 대형 M&A에 나섰다는 점【?특히 주목을 끌고 있다.

일본에선 정부 고위인사까지 나서 이번 M&A에 환영의 뜻을 밝혔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은 24일 기자간담회에서 “FT가 닛케이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면 (이번 인수는) 나를 포함한 일본 독자들에게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고 말했다.

○미디어업계 재편 가속화될 듯

이번 인수는 닛케이가 추진하고 있는 디지털화와 글로벌화를 위한 ‘양수겸장(兩手兼將)’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신문사의 디지털화는 디지털시대에 맞게 정보(콘텐츠)의 생산과 유통, 조직 등을 전환하는 것을 말한다. FT는 디지털화에서 가장 앞서 있는 글로벌 매체로 손꼽힌다. 닛케이도 2010년 닛케이 인터넷판을 만들고, 2013년 가을에는 아시아 뉴스를 영어로 보내는 닛케이아시안리뷰를 창간했다. 지난해 봄에는 태국 방콕에 아시아 취재거점도 신설했다.

닛케이의 FT 인수가 미디어업계의 또 다른 M&A를 자극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당장 FT가 절반의 지분을 갖고 있는 주간 이코노미스트지가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NYT는 블룸버그가 이코노스미스트지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루머가 오랫동안 있었다며 최근 존 미클스웨이트 전 이코노미스트 편집장을 새로운 편집국장으로 영입한 사실을 소개했다. 미국의 대표적 산업 보고서인 IBI월드는 향후 신문업계가 자발적인 통합과 구조조정, 신기술 적응을 통해 보다 효율적으로 진화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도쿄=서정환 특파원/뉴욕=이심기 특파원 ceose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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