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디지털 언론사 지향하는 니혼게이자이신문
다시 벌어지는 한일 국력 격차, 우리나라의 갈 길은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日本經濟新聞,닛케이)의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매수건은 여러모로 의미있는 큰 사건이다. 발표 당일까지도 독일의 악셀 슈프링어가 매수 기업으로 보도될 정도로 닛케이의 FT 매수는 전격적이었다. 기자도 당일 뉴스를 본 뒤 큰 충격을 받았다. 26일까지도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어지럽다.
일본의 고급 정론지를 대표하는 닛케이의 FT 매수는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미디어업계는 물론 한국 사회 전체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먼저 닛케이의 FT 매수극을 간단히 정리한다. 영국 교육미디어그룹 피어슨은 23일 오후 파이낸셜타임스그룹을 현금 8억4400만 파운드(약 1조5000억 원)에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매각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일본 미디어기업이 외국 언론사를 사들인 사례 중 역대 최대 규모다.
이날 발표가 나오기 전까지 피어슨은 지난 몇주 동안 닛케이, 독일 미디어그룹 악셀 슈프링어와 동시에 매각 협상을 벌여왔다. 피어슨의 전 최고경영자(CEO) 마저리 스카디노는“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FT를 매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2013년1월 취임한 후임 존 팰런 CEO가 교육사업에 전념하면서 FT 매각설은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닛케이는 이번 FT 매수로 신문 296만4000부, 온라인 유료 회원 93만4000명으로 세계적인 언론사 반열에 올랐다. 미국 월스트리스저널(WSJ)과 함께 세계 3대 경제신문으로 꼽히던 FT와 닛케이의 합병으로 세계 최고 권위와 품질을 가진 경제미디어그룹이 탄생했다.
기타 쓰네오 니혼게이자이신문사 회장은 FT 인수 후 “세계에서 가장 명예로운 보도기관을 파트너로 맞아들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면서 “세계경제의 발전에 공헌하고 싶다”고 밝혔다. 팰런 CEO는“미디어의 변혁기에 FT의 가치를 가장 높이는 길은 세계적인 디지털 기업과 통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의 FT 매수는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디어업계뿐 아니라 한국 기업과 경제가 가야할 방향을 잘 보여준다.
첫째는 전환기를 맞은 우리나라의 미디어 업계에 대한 엄중한 경고 메시지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최고경영진은 FT 매수 발표 다음날일 24일 공식 기자회견을 열어 매수 배경과 향후 경영 방침을 밝혔다. 니혼게이자이신문그룹이 ‘글로벌화’와 ‘디지털화’에 매진해 ‘글로벌 디지털 언론사’를 만들겠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닛케이가 목표로 내건 ‘글로벌 디지털 언론사’ 관점에서 한국 언론사들의 자성이 필요한 대목이다. 사실 우 ?ざ?미디어 업계는 그동안 한국사회의 발전에 비해 낙후됐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좁은 국내시장에 안주한 것은 물론 무분별한 인터넷 매체들의 출현으로 질적으로 10년, 20년 전으로 퇴보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품질 경쟁이 아닌 ‘클릭 경쟁’을 펼친 결과 한국 언론의 품질 저하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두 번째는 제조강국 일본과 독일의 부활이다. 공교롭게도 두 나라 모두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했던 나라들이다. 독일과 일본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경제의 저성장세 속에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고 있다. 독일의 경제파워는 최근 EU(유럽연합)의 그리스의 구제금융 지원 과정에서도 잘 나타난다. 일본도 2011년 동일본대지진의 후유증을 잘 마무리한 뒤 2012년 말 아베정권 출범 후 괄목할 만한 경제적 성과를 내고 있다.
세계 최고 경제신문인 파이낸셜타임스(FT)의 최종 인수전에 뛰어든 미디어그룹이 독일과 일본 언론사라는 사실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영국은 글로벌 시장에서 내놓을만한 제조상품이 없는 대신 금융과 서비스업으로 ‘선진국’ 명맥을 유지하는 국가다. 이에 비해 주요 선진국 중 여전히 제조업 경쟁력이 가장 강하다는 평가를 받은 나라가 일본과 독일이다.
이들 두 나라의 언론사가 금융서비스 선진국인 영국을 대표하는 FT를 먹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제조업의 튼튼한 버팀목 없이 서비스업만으로 굳건한 경제력을 유지하긴 어렵다. 우리나라가 앞으로 지향해야 하는 산업구조적 측면에서도 일본과 독일은 시사하는 점이 많은 국가다.
세 번째는 한국과 일본의 국력 격차가 다시 벌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다. 2000년 대 들어 痢?ざ?사람들 사이에선 19세기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려면에서 한참 앞서 갔던 일본을 많이 따라잡고 있다는 자신감이 팽배했다. 2011년 3.11 동일본 대지진 직후 일본경제가 큰 타격을 입으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신감은 더욱 고조됐다. 특히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로 대표되는 한국의 대표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 기업과 대등하거나 일부 앞서는 지표가 나타나면서 한국인들의 자존심을 한껏 드높였다.
2000년 대 중반 일본에선 1년이 멀다하고 국정 최고책임자인 총리가 자주 교체되면서 국가의 리더십도 큰 혼란을 겪기도 했다. 정치 시스템에선 한국이 일본보다 한수 위라는 평가가 일본에서조차 나오기도 했다.
2012년 말 일본에서 극우 보수 성향의 아베 정권이 출범하면서 양국의 경쟁력이 다시 벌어지는 양상이다. 일본은 그동안의 총체적인 국가 혼란에서 벗어나 국가 발전을 위해 정부와 국민들이 다시 일사분란하게 앞을 보고 뛰고 있는 형국이다. ‘강력한 일본의 부활’을 내건 아베 총리의 구호가 힘을 받고 있다.
현대는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다. 국경이 없어진 자본주의체제 아래 경제 정보는 곧 ‘돈’이며 ‘국력’의 지표다. 가장 보수적으로 알려진 일본의 언론사가 세계 최고 경제매체를 인수했다는 사실은 이런저런 점에서 역사적인 사건이 분명하다.
최인한 한국경제신문 편집국 부국장 겸 한경닷컴 뉴스국장
janus@hankyung.com
[한경+ 구독신청] [기사구매] [모바일앱]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