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하우스 보트

입력 2015-07-28 18:20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하우스보트(house boat)는 주거공간인 집처럼 꾸민 배를 말한다. 동남아시아에 많이 있는 선상가옥도 같은 이름으로 부를 수 있겠지만 큰 차이가 있다. 태국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등에 있는 선상가옥은 대부분 인근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천연재료, 즉 나무로 짓는다. 반면 하우스보트는 목재 플라스틱 철판 등의 현대식 재료로 만들고 무엇보다 편의성을 강조한 디자인을 신경 쓴다. 선상가옥의 고급판이다.

수로나 강이 유명한 ‘물의 도시’들은 대부분 이 배를 활용한 하우스보트 호텔을 운영하고 있다. 암스테르담 베네치아 등은 낭만이 있고 프라이버시가 잘 보호된다며 하우스호텔을 선전하고 있다.

수로가 발달한 영국에서는 최근 집값을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이나 젊은 층들이 아예 하우스보트를 임대해 생활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런던운하의 경우 하우스보트가 지난 5년간 50%나 증가했다. 브리튼수로에는 3만3000여대의 하우스보트가 운영되고 있는데, 작년에 비해 9% 늘어난 수치다. 침실 2칸짜리 하우스보트를 이용하는 데 내는 월세는 125만원 정도다. 도시 내의 수로에 정박하고 있기 때문에 도심으로 걸어나갈 수도 있어 최근에는 하우스보트?사무실로 쓰는 사람도 많아졌다고 한다.

같은 하우스보트에도 편차가 있다. 템스강 한편 태그스섬에는 65채의 초호화 하우스보트가 정박해 있다. 대형 보트들이 대부분인데 침실 5칸짜리의 판매가격은 33억5000만원이나 된다. 섬 안에 주차장, 정원, 별장이 따로 있고 이들만이 사용하는 전용 다리도 제공된다.

정박해 있는 초호화 하우스보트와 달리 대부분 하우스보트는 2주 이상 한 곳에 머물 수 없다는 규제에 따라 항상 옮겨다녀야 한다. 비용도 만만찮다. 보트운행 허가비가 119만원이나 되고, 보험료가 36만원, 보트안전 증명비가 27만원 등이다. 또 연료 등 유지비로도 1년에 18만~36만원이 나간다. 돌아다니지 않고 한곳에 정박해 있으려면 1년에 360만원 정도를 내야 한다.

불편한 점도 많다. 주소가 없다는 게 문제다. 우편물을 받을 수 없고 은행계좌 개설에도 어려움이 있다. 물을 사서 먹어야 하고 가스교환, 오물통 처리 등도 직접 해야 한다. 하우스보트들이 늘면서 자리 싸움도 치열해지고 생활 환경은 더 열악해지고 있다. 런던의 하우스보트는, 결국 한 조각 땅이 없어 강가나 해변으로 밀려난 선상가옥 신세가 될 날이 머잖아 보인다.

처음에는 젊은이들의 낭만처럼 보이던 것이 최근에는 점차 누추한 일상의 모습만 도드라져 보인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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