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기자 방문은 성(省)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가능합니다.”
한국 기자들이 중국 반도체업체에 방문을 타진하면 한결같이 이런 대답을 듣는다. “허가를 받을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해도 회신은 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KOTRA나 한국반도체협회 등을 통해 다시 연락해봐도 “한국 기자들을 꺼리는 것 같다”는 관계자들의 답신만 돌아온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상황은 달랐다. 간단한 전화 한 통화만으로도 웬만한 중국 반도체업체의 방문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기자가 지난해 중국 최대 시스템반도체업체 SMIC를 찾았을 때는 부사장급이 직접 인터뷰에 응하고 생산 라인을 소개할 정도로 홍보에 적극적이었다. 당시 펑은린 SMIC 부사장은 “한국 기업들과의 협업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왜 중국 반도체업체들의 태도가 갑자기 바뀌었을까. 업계 전문가들은 중국 반도체업체들이 한국 업체들을 경쟁자로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한다. 지난해 중국 반도체업체들은 한국 업체에 수차례 기술제휴와 협업을 제안했다. SMIC는 삼성전자에 14나노 핀펫 공정 기술을 전수해 달라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 ? 하지만 협업이 성사된 사례는 없다. 한국 업체들이 기술 유출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후 중국은 미국 업체들과 손잡기 시작했다. 세계 최대 반도체업체 인텔은 중국 최대 팹리스(반도체 설계업체)인 칭화유니그룹에 대규모 지분투자를 했고, SMIC는 삼성 대신 퀄컴과 손잡고 최신 14나노 공정을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미국 기업들 역시 기술 유출을 우려했지만, 중국 업체와 손잡고 중국 내수 시장을 적극 공략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는 설명이다.
자금력과 거대한 내수 시장을 가진 중국이 기술력을 갖춘 미국과 손잡기 시작한다면 자칫 중국 시장에서 한국 반도체업체만 고립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국이 자국 업체와 제휴한 기업들에만 내수 시장을 열고 한국 업체들을 배척할 가능성도 있다. 중국 반도체업계에선 한국이 아직 중국 기업들을 ‘기술 도둑’ 수준으로 생각하는 것을 불쾌해 한다는 얘기가 돈다. 중국 내수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라도 중국 반도체업체들과 공생할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남윤선 산업부 기자 inkling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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