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기능한국인 1호' 류병현 동구기업 대표
[ 김해연 기자 ] 철판을 누르는 2000t급 금형 프레스 기계는 예상과 달리 조용했다. 숙련된 기술자의 조작에 따라 육중한 몸체가 내려올 때마다 평평한 철판은 구멍이 나고 꺾여 형상을 갖춘 부품으로 재탄생했다. 바깥 기온이 35도에 육박하는 폭염 속에서 땀 흘리는 작업자들 사이로 금형 틀에서 나온 제품을 살피는 류병현 동구기업 대표(59·사진)의 눈매는 매서웠다. “이 부장, 오늘 안에 시제품 볼 수 있겠어? 시트 레일(자동차 부품)은 각도가 정확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때?” 작업장을 둘러보는 동안 그는 기계를 이용해 무게를 재거나 길이를 측정하지 않았다. 그냥 금형 틀에서 찍어져 나온 제품을 손으로 들어보고 눈으로 살폈다. 류 대표의 이 ‘눈대중’과 ‘어림’ 속엔 진주기계공고를 졸업한 뒤 연매출 192억원의 금형기업을 일군 기능인의 삶이 녹아 있다. 물론 양산 단계의 제품은 1㎛(1000분의 1㎜) 단위까지 측정하는 공정을 거쳐 완성도를 높인다.
금형(金型)은 부품을 찍어내는 틀이다. 대량생산을 위해 등장 杉? 플라스틱을 성형하는 ‘사출금형’과 철판을 성형하는 ‘프레스금형’으로 나뉜다. 경남 창원국가산업단지 안에 있는 동구기업은 프레스금형 설계 및 제작 전문업체로 1993년 설립됐다. 올해 자동차와 풍력발전기 부품 생산도 시작했다. 이곳에서 만든 금형제품은 LG전자를 비롯해 자동차 와이퍼를 생산하는 KCW, 글로벌 가전업체 일렉트로룩스 등 15개국 30여개 업체에 공급한다.
일찍 맛본 좌절, 쇠처럼 단단해진 삶
금형분야 기능인의 삶을 걷는 류 대표에게 큰 전환점이 있었다. 1977년 열린 제23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다. 교사의 꿈을 접고 가난을 이기기 위해 진주기계공고에 진학한 그는 1976년 전국기능경기대회 목형(木型)부문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를 계기로 다음해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 출전했다. 국내 기능인들에게 1977년은 잊지 못할 해다. 대회 참가 10년째이던 그해 한국은 28명의 선수가 출전해 금메달 12명, 은메달 4명 등 모두 21명이 입상하며 숙원이던 기능경기 분야 세계 정상에 올랐다.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한 이 대회에서 21세 청년은 인생에서 가장 ‘쓴맛’을 봤다.
“국제기능올림픽 금메달을 따기 위해 6년을 매달렸습니다. 당연히 금메달을 목에 걸고 금의환향할 줄 알았고요. 하지만 예전과 전혀 다른 과제가 출제됐고, 저는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청와대 초청 등 환영식이 성대하게 열렸지만 혼자 엑스트라 같았죠.”
이때 맛본 쓴맛은 류 대표의 삶에 강한 ‘프레스’가 됐고 그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경쟁사회에서 승자와 패자로 나뉘는 현실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리고 다짐했죠. 10 ? 20년 후를 상상하며 기술을 연마하겠노라고. 결국 그때의 오기가 여기까지 온 동력이 된 셈이죠.”
독한 결심은 기능인으로 한눈팔지 않는 밑거름이 됐다. 고교 졸업과 함께 입사한 부산 금성사(현 LG전자)에서 금형을 접했다. 직장생활을 접고 1993년 동구기업을 설립해 금형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회사 설립 후 금형기술 개발과 기능 연마에만 매달렸다. 복합금형 등 특허 10건과 실용신안 4건이란 결실로 돌아왔다. 금형기술의 우수성이 알려지면서 국내외 가전과 자동차 부품 제조회사의 주문이 이어졌다. 경남 창원 팔룡동에서 2006년 성주동으로 옮기며 회사도 급성장했다. ‘금형기술인’ 한길을 걷고 있는 그는 2006년 ‘대한민국 기능한국인 1호’로 선정됐다. 1977년 국제기능올림픽에서 맛본 쓴맛이 38년의 집념 끝에 열매를 맺은 것이다.
기능인의 자부심, 후배들에게 전수
‘기능한국인 1호’라는 타이틀은 류 대표에게 책임감으로 다가왔다. 동구기업이 기능인력 양성에 각별한 애정을 쏟고 있는 이유다. 그는 기능한국인 선정 이후 자신은 물론 기업의 위상이 크게 달라졌다고 말한다. “우수 숙련기술자를 대상으로 하는 기능한국인 1호라는 상징성은 매우 큽니다. 예비 기능인은 물론 대한민국 숙련기술인에게도 ‘롤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자부심이 생기더군요. 후배들에게 기술뿐만 아니라 자부심까지 물려주고 싶습니다.”
동구기업은 산학일체형 도제학교에 참여하고 있다. 창원기계공업고등학교 컴퓨터응용기계과 2학년생 두 명이 도제 훈련생으로 뽑혀 이곳에서 학교 교육과 함께 현장교육을 받고 있다. 학교 이론수업(1주일)과 기업체 현장실습(1주일)을 번갈아가며 하는 형태다. 현장에서는 정밀측정과 밀링가공, 연삭가공 등의 기술을 주로 익힌다.
10여명의 일학습병행제 근로자도 동구기업에서 일한다. 이들은 대학 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이 이뤄진 상태다. 동구기업은 한국폴리텍대와 함께 교재를 개발하고 기업 현장교사 연수를 하는 등 시스템을 갖췄다. 교과과정은 총 4년으로 밀링 등 가공분야 1년, 가전·자동차금형 조립분야 2년, 3D·캐드 등 설계과정 1년으로 짜였다. 동구기업은 올해 일학습병행제 우수사례 경진대회(부산·울산·경남지역)에서 2개 부문(기업 및 학습근로자 부문) 1위를 차지했다. 다음달 열리는 전국대회에서도 좋은 성과를 기대하고 있다.
시스템이 갖춰졌다고 무턱대고 아이들을 받지는 않는다는 게 류 대표의 지론이다. “회사에 오는 아이들에게 저는 분명히 묻습니다. 숙련된 금형 기술인으로 거듭나기까지 오랜 시간을 인내할 수 있겠느냐고. 그런 각오가 없다면 지금 당장 그만두라고 합니다. 금형으로 끝장을 보겠다는 아이들만 받다보니 중도에 포기하는 이들이 적습니다.”
동구기업에는 ‘금형기술연구소’도 있다. 류 대표의 기술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2001년 7월 설립된 동구기업 금형기술연구소에는 10명의 연구원이 일하고 있다. 지난해 산업통상자원부가 지원하는 우수기술연구센터(ATC)로 지정되기도 했다.
기능인재 제대로 키우려면
류 대표는 요즘 젊은이들이 기술 배우기를 꺼린다고 아쉬워했다. “과거 기능인이라고 하면 ‘산업역군’ ‘
[ 김해연 기자 ] 철판을 누르는 2000t급 금형 프레스 기계는 예상과 달리 조용했다. 숙련된 기술자의 조작에 따라 육중한 몸체가 내려올 때마다 평평한 철판은 구멍이 나고 꺾여 형상을 갖춘 부품으로 재탄생했다. 바깥 기온이 35도에 육박하는 폭염 속에서 땀 흘리는 작업자들 사이로 금형 틀에서 나온 제품을 살피는 류병현 동구기업 대표(59·사진)의 눈매는 매서웠다. “이 부장, 오늘 안에 시제품 볼 수 있겠어? 시트 레일(자동차 부품)은 각도가 정확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때?” 작업장을 둘러보는 동안 그는 기계를 이용해 무게를 재거나 길이를 측정하지 않았다. 그냥 금형 틀에서 찍어져 나온 제품을 손으로 들어보고 눈으로 살폈다. 류 대표의 이 ‘눈대중’과 ‘어림’ 속엔 진주기계공고를 졸업한 뒤 연매출 192억원의 금형기업을 일군 기능인의 삶이 녹아 있다. 물론 양산 단계의 제품은 1㎛(1000분의 1㎜) 단위까지 측정하는 공정을 거쳐 완성도를 높인다.
금형(金型)은 부품을 찍어내는 틀이다. 대량생산을 위해 등장 杉? 플라스틱을 성형하는 ‘사출금형’과 철판을 성형하는 ‘프레스금형’으로 나뉜다. 경남 창원국가산업단지 안에 있는 동구기업은 프레스금형 설계 및 제작 전문업체로 1993년 설립됐다. 올해 자동차와 풍력발전기 부품 생산도 시작했다. 이곳에서 만든 금형제품은 LG전자를 비롯해 자동차 와이퍼를 생산하는 KCW, 글로벌 가전업체 일렉트로룩스 등 15개국 30여개 업체에 공급한다.
일찍 맛본 좌절, 쇠처럼 단단해진 삶
금형분야 기능인의 삶을 걷는 류 대표에게 큰 전환점이 있었다. 1977년 열린 제23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다. 교사의 꿈을 접고 가난을 이기기 위해 진주기계공고에 진학한 그는 1976년 전국기능경기대회 목형(木型)부문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를 계기로 다음해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 출전했다. 국내 기능인들에게 1977년은 잊지 못할 해다. 대회 참가 10년째이던 그해 한국은 28명의 선수가 출전해 금메달 12명, 은메달 4명 등 모두 21명이 입상하며 숙원이던 기능경기 분야 세계 정상에 올랐다.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한 이 대회에서 21세 청년은 인생에서 가장 ‘쓴맛’을 봤다.
“국제기능올림픽 금메달을 따기 위해 6년을 매달렸습니다. 당연히 금메달을 목에 걸고 금의환향할 줄 알았고요. 하지만 예전과 전혀 다른 과제가 출제됐고, 저는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청와대 초청 등 환영식이 성대하게 열렸지만 혼자 엑스트라 같았죠.”
이때 맛본 쓴맛은 류 대표의 삶에 강한 ‘프레스’가 됐고 그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경쟁사회에서 승자와 패자로 나뉘는 현실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리고 다짐했죠. 10 ? 20년 후를 상상하며 기술을 연마하겠노라고. 결국 그때의 오기가 여기까지 온 동력이 된 셈이죠.”
독한 결심은 기능인으로 한눈팔지 않는 밑거름이 됐다. 고교 졸업과 함께 입사한 부산 금성사(현 LG전자)에서 금형을 접했다. 직장생활을 접고 1993년 동구기업을 설립해 금형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회사 설립 후 금형기술 개발과 기능 연마에만 매달렸다. 복합금형 등 특허 10건과 실용신안 4건이란 결실로 돌아왔다. 금형기술의 우수성이 알려지면서 국내외 가전과 자동차 부품 제조회사의 주문이 이어졌다. 경남 창원 팔룡동에서 2006년 성주동으로 옮기며 회사도 급성장했다. ‘금형기술인’ 한길을 걷고 있는 그는 2006년 ‘대한민국 기능한국인 1호’로 선정됐다. 1977년 국제기능올림픽에서 맛본 쓴맛이 38년의 집념 끝에 열매를 맺은 것이다.
기능인의 자부심, 후배들에게 전수
‘기능한국인 1호’라는 타이틀은 류 대표에게 책임감으로 다가왔다. 동구기업이 기능인력 양성에 각별한 애정을 쏟고 있는 이유다. 그는 기능한국인 선정 이후 자신은 물론 기업의 위상이 크게 달라졌다고 말한다. “우수 숙련기술자를 대상으로 하는 기능한국인 1호라는 상징성은 매우 큽니다. 예비 기능인은 물론 대한민국 숙련기술인에게도 ‘롤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자부심이 생기더군요. 후배들에게 기술뿐만 아니라 자부심까지 물려주고 싶습니다.”
동구기업은 산학일체형 도제학교에 참여하고 있다. 창원기계공업고등학교 컴퓨터응용기계과 2학년생 두 명이 도제 훈련생으로 뽑혀 이곳에서 학교 교육과 함께 현장교육을 받고 있다. 학교 이론수업(1주일)과 기업체 현장실습(1주일)을 번갈아가며 하는 형태다. 현장에서는 정밀측정과 밀링가공, 연삭가공 등의 기술을 주로 익힌다.
10여명의 일학습병행제 근로자도 동구기업에서 일한다. 이들은 대학 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이 이뤄진 상태다. 동구기업은 한국폴리텍대와 함께 교재를 개발하고 기업 현장교사 연수를 하는 등 시스템을 갖췄다. 교과과정은 총 4년으로 밀링 등 가공분야 1년, 가전·자동차금형 조립분야 2년, 3D·캐드 등 설계과정 1년으로 짜였다. 동구기업은 올해 일학습병행제 우수사례 경진대회(부산·울산·경남지역)에서 2개 부문(기업 및 학습근로자 부문) 1위를 차지했다. 다음달 열리는 전국대회에서도 좋은 성과를 기대하고 있다.
시스템이 갖춰졌다고 무턱대고 아이들을 받지는 않는다는 게 류 대표의 지론이다. “회사에 오는 아이들에게 저는 분명히 묻습니다. 숙련된 금형 기술인으로 거듭나기까지 오랜 시간을 인내할 수 있겠느냐고. 그런 각오가 없다면 지금 당장 그만두라고 합니다. 금형으로 끝장을 보겠다는 아이들만 받다보니 중도에 포기하는 이들이 적습니다.”
동구기업에는 ‘금형기술연구소’도 있다. 류 대표의 기술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2001년 7월 설립된 동구기업 금형기술연구소에는 10명의 연구원이 일하고 있다. 지난해 산업통상자원부가 지원하는 우수기술연구센터(ATC)로 지정되기도 했다.
기능인재 제대로 키우려면
류 대표는 요즘 젊은이들이 기술 배우기를 꺼린다고 아쉬워했다. “과거 기능인이라고 하면 ‘산업역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