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전선 영업점에 힘 실어줘 '1등 은행 부활' 날갯짓
현장 직원들과 소통 강조…'KB사태' 후 조직화합 앞장
"저랑 사진 한장 찍어주세요"…청경에게 먼저 다가가 요청
회사에 남다른 애착
KB서 두번이나 밀려났지만 회사 떠나서도 자사주 보유
CFO·CEO로 화려한 복귀
[ 박신영 기자 ] 국민은행 신제주지점에서 청원경찰로 일하는 김종구 씨는 지난 5월20일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겸 국민은행장과의 만남을 생각하면 지금도 기분이 좋다. 올초부터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전국 지역본부를 차례로 방문해온 윤 회장은 이날 신제주지점을 찾아 영업점 직원들과 대화한 뒤 기념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청경 신분의 김씨는 함께 사진을 찍기가 뭣해 멀찍이서 지켜만 봤다. 그러자 윤 회장이 먼저 다가가 말을 건넸다. “저랑 사진 한 장 찍으시죠.”
윤 회장은 김 청경에게 “고객이 은행에 와서 가장 먼저 만나는 얼굴이 청경”이라며 “고객들은 ‘윤종규’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청경의 얼굴은 잘 아는 만큼 여러분들이 峠蠻宣?국민은행이 잘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청경은 “2003년부터 12년째 이 지점에서 일하면서 여러 은행장을 만나봤지만 먼저 사진을 찍자고 다가온 최고경영자(CEO)는 윤 회장이 처음이었다”고 전했다.
엘리베이터까지 나와 인사하는 CEO
윤 회장은 과거 국민은행 부행장과 KB금융지주 부사장을 지낼 때 누가 사무실로 찾아오든 엘리베이터 앞까지 나와 배웅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외부 손님뿐 아니라 말단 직원이 보고하러 와도 꼭 엘리베이터 앞까지 나와 인사했다. 그는 “내 집(사무실)에 찾아온 사람을 대문(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윤 회장의 최대 강점은 누구를 만나도 편안한 느낌을 준다는 데 있다. 주변에선 엘리트 코스를 걷지 않은 게 특유의 소탈함 속에 묻어난다고 말한다. 광주상고를 나와 1974년 외환은행에 입행한 윤 회장은 은행에 다니면서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야간으로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 공인회계사 시험에 붙었고 행정고시(25회)도 합격했다. 하지만 학내 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끝내 공무원은 되지 못했다.
윤 회장은 이런 소탈함을 앞세워 지난해 11월 취임 후 줄곧 현장 직원들과의 소통에 힘써왔다. 임직원 모두에게 ‘내가 주인’이라는 점을 일깨우기 위해서다. 그는 평소 “맡은 바 일이 다를 뿐 인격체로서 모든 사람은 똑같고, 누구나 존경받을 가치가 있다”고 강조한다. 국민은행의 한 임원은 “과거 윤 회장이 부행장이었던 시절 실무 부장들과 회의를 종종 하곤 했다”며 “나중에 부장들끼리 얘기해보니 다들 ‘윤 부행장이 나를 좋아하는구나’라고 착각하고 있었다”고 털어놨다.
회사 떠나도 자사주 매각 안해
윤 회장은 지난 7월10일 자사주를 매입했다. 그가 자사주를 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보면 윤 회장은 2011년 KB금융지주 최고재무책임자(CFO) 시절부터 최근까지 꾸준히 자사주를 사왔다.
그는 2013년 KB금융을 잠시 떠났을 때도 자사주를 팔지 않았다. 2004년 국민은행 부행장직을 그만뒀을 때도 신임 행장의 취임이 확정될 때까지 자사주를 처분하지 않았다. 윤 회장은 대다수 경영진이 회사를 떠나면 자사주를 매각하는 것과 다른 모습을 보여왔다.
윤 회장은 이에 대해 “지속가능한 경영을 했다는 점을 직원과 주주들에게 보이고 싶어서”라고 했다. 회사를 그만둔 뒤에도 자사주를 팔지 않은 것은 경영진으로 있는 동안 단기간의 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KB금융과 국민은행의 미래를 보고 경영했다는 증거라는 게 주변의 평가다.
윤 회장의 KB금융에 대한 애착은 남다르다. 1980년 삼일회계법인에 들어가 20년 넘게 일한 그는 한때 차기 경영진으로도 꼽히던 잘나가는 회계사였다. 국민은행과의 인연은 2002년 고(故)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이 삼일회계법인 부대표이던 그를 삼고초려를 통해 영입하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뜻밖의 일로 국민은행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국민은행이 KB국민카드를 흡수합병하면서 생긴 회계처리 문제로 김 전 행장과 함께 금융당국 ?징계를 받아 2004년 말 은행을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김앤장으로 자리를 옮긴 윤 회장은 2010년 어윤대 전 KB금융 회장의 요청으로 KB금융 최고재무책임자(CFO·부사장)로 복귀했다.
윤 회장은 KB금융에서 두 번이나 밀려나다시피 떠났다가 KB금융 회장 겸 국민은행장으로 돌아왔다. 2전3기의 이런 경험은 조직을 챙기는 데 큰 힘이 됐다. 그는 부행장 시절 영업 전반을 배웠고, 지주 부사장 시절엔 그룹 전체를 아우르는 시각을 가질 수 있었다고 귀띔했다.
그래서 KB금융과 국민은행 임원들은 윤 회장이 부드러우면서도 대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임원 회의 때 큰 소리를 낸 적은 없지만 모든 업무를 잘 알고 있다 보니 보고를 소홀히 하거나 지시사항을 성실히 수행하지 않으면 금방 들통 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임원들은 명확하게 업무지시를 내리는 것에 만족한다. 한 부행장은 “예전엔 CEO의 얘기에 다른 뜻이 있는 것은 아닌지 표정이나 배경을 살폈지만 윤 회장은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전달하기 때문에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장 직원과의 간극을 좁혀라”
윤 회장은 올 들어 임원들에게 ‘현장과의 간극을 좁혀달라’고 줄곧 당부했다. 과거 CEO들이 볼썽사납게 충돌한 ‘KB 사태’ 이후 흐트러진 조직을 추스르고 직원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선 본부 경영진과 현장 조직의 괴리를 좁히는 게 무엇보다 급선무라는 판단에서다.
윤 회장은 15~20년차 부부장 또는 차장 직급의 실무 팀장들을 은행 경영과 관련된 핵심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시켰다. 지난 2월부터 국민은행 본부 60개 부서 팀장급 직원 300여명 전원과 세미나를 한 게 시작이었으며 이후엔 돌아가며 회의를 열고 있다.
윤 회장은 실무 팀장들에게 “영업점에서 요구하는 것에 절대 ‘안 된다’는 말을 먼저 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또 세상이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는 만큼 조직도 변화에 빠르게 적응해야 하고, 이를 주도할 사람은 본점이 아닌 영업점 직원들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윤 회장의 경영 방침은 서서히 성과를 거두고 있다. KB금융은 저금리 상황 속에서도 올 상반기에만 9446억원의 순이익을 달성해 작년 동기(7515억원)보다 이익 규모를 25.7%나 늘렸다. 1위 신한금융과 3395억원의 격차가 있지만, 상반기에 희망퇴직금으로 3454억원의 비용이 발생했던 점을 감안하면 신한금융을 위협할 정도에 이르렀다는 게 내부 평가다.
■윤종규 회장 프로필
△1955년 전남 나주 출생 △1974년 광주상고 졸업 △1982년 성균관대 경영학과 졸업 △1985년 서울대 경영학 석사 △1999년 성균관대 경영학 박사 △1974년 한국외환은행 △1980년 삼일회계법인 △1999년 삼일회계법인 부대표 △2002년 국민은행 재무전략본부장(CFO·부행장) △2004년 국민은행 개인금융그룹 대표(부행장) △2005년 김앤장 법률사무소 상임고문 △2010년 KB금융 최고재무책임자(CFO·부사장) △2014년 KB금융 회장 겸 국민은행장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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