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마침내 위안화 '판도라 상자'를 열었다. 이틀 사이 위안화 가치를 3.51% 절하함에 따라 중국발(發) 환율전쟁이 본격화됐다.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는 신흥국 전반의 통화가치를 떨어뜨려 자본 유출을 부추긴다는 점 외에도 글로벌 증시 변동성을 키우는 악재가 될 전망이다.
일부에서는 연내로 예정된 미국의 금리 인상 일정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 인민은행, 이틀 사이 위안화 3.51% 절하
12일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위안화 환율을 달러당 6.3306 위안으로 고시했다.
전날 고시환율 6.2298위안과 비교해 달러 대비 위안화 가치가 1.62% 하락한 것이다. 이에 따라 위안화는 지난 이틀 사이 3.51% 대폭 평가절하됐다.
인민은행은 전날 고시환율을 1994년 이후 하루 최대폭인 1.86% 기습 절하하면서 이를 '일회성'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날 또 예상과 달리 1.62%로 크게 평가절하함에 따라 본격적인 환율전쟁 국면에 돌입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금융위기 속에서도 꼿꼿하던 위안화를 절하했다는 건 중국 정부가 정책 실패를 인정함과 동시에 치열한 환율경쟁에 나섰다는 걸 의미한다는 설명이다.
박형중 대신증권 연구원은 "중국이 이렇게 빨리 위안화 추가 절하에 나설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며 "중국 정부가 환율전쟁에 뛰어들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 연구원은 "그동안 경기 부양 수단으로 '통화정책'(금리인하)을 주로 써온 중국 정부가 '환율정책'으로 방향을 튼 것"이라며 "앞으로 또 다시 위안화를 절하할 가능성도 열어놔야 한다"고 진단했다.
김광현 유안타증권 연구원 역시 "중국 정부가 이례적으로 위안화를 두 차례 평가절하한 건 그만큼 중국 경기가 어렵다는 걸 방증한다"며 "경기 부양을 위해 환율카드를 제대로 뽑아들었다"고 분석했다.
위안화 평가절하로 인해 중국 의존도가 높은 신흥국과 원자재를 수출하는 신흥국 통화 가치 하락 위험은 더욱 높아졌다.
한국 역시 원화 약세 흐름이 강해져 이날 현재 원·달러 환율은 장중 3년8개월 만에 1190원대를 돌파했다.
이는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환차손이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으로부터의 자본 이탈 가능성을 키우는 요인이다.
한국 수출기업 입장에서도 중국 제품과의 가격경쟁에 노출되기 시작했다는 점이 부담이다.
◆ 위안화 절하, 미국 경제에도 악재
전문가들은 특히 1994년 사태와 비교해 위안화 절하가 '판도라의 상자'와 같다고 진단했다.
당시 중국 정부가 위안화 절하를 단행할 때는 미국의 금리 인상을 앞두고 있던터라 최근 글로벌 경제가 맞닥뜨린 상황과 유사했다.
1994년 중국의 1차 위안화 평가절하 이후 신흥국 통화 약세와 함께 선진국의 주가 버블이 나타나는 등 금융 시장 전반이 타격을 받았다.
같은 해 멕시코 외환위기가 발생했는가 하면, 1997년 동아시아 위환위기 사태를 초래하는 원인이 됐다는 분석도 있다.
이은택 SK증권 연구원은 "지금은 1994년 당시보다 상황이 훨씬 안정적"이라면서도 "환경이 비슷하기 때문에 당시 발생했던 위험을 눈여겨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재환 KDB대우증권 연구원도 "위안화 절하는 달러화 고평가를 강화시켜 장기적으로는 미국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위안화가 절하될수록 글로벌 경제에는 악재가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이번 위안화 절하 조치로 중국과 미국의 긴장관계가 더욱 높아졌다고 의견도 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의 방미를 앞두고 위안화 문제가 두 나라간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다.
실제 대(對)중 무역적자에 시달려온 미국은 위안화 절상 압박을 해왔는데, 중국 정부의 이번 조치로 미국 수출에 미치는 악영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김 연구원은 "시진핑 주석의 미국 방문을 앞둔 시점에서 위안화 평가절하는 미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것"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위안화 절하를 단행했다는 걸 눈여겨봐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위안화 절하가 금리 인상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미국 중앙은행(Fed) 계획에도 차질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박 연구원은 "위안화 절하로 신흥국 통화 약세가 가속화될 경우 미국 금리 인상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다만 그렇다 求囑捉?미국 금리 인상이 무한정 연기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고 내다봤다.
권민경 한경닷컴 기자 k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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