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제조업 부활' 드라이브, 해외공장 유턴 지원
제조강국의 '회복탄력성' 주목…산업기술 R&D 확대
일자리 純增 효과…한국 제조경쟁력 강화 시급
"글로벌 금융위기 시에 제조업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국가,
특히 독일과 일본이 강한 경제 체질을 보여줬다"
이장균 <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
미국 독일 일본 중국 등 주요국이 ‘제조업 르네상스’에 나서고 있다.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제조업 활성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해외로 나간 제조 공장을 다시 불러들이는 리쇼어링(reshoring)을 촉진하고 정보통신기술(ICT), 소재 등을 활용해 첨단제조업으로 변신시키는 정책에 적극적이다. 미국은 1990년대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제조업 부가가치 비중이 15~16%대에 머물렀으나 2001년엔 13.9%로 내려갔고, 2009년에는 12%까지 떨어졌다. 이렇게 제조업 위축이 지속됐어도 미국 정부는 별다른 정책수단을 꺼내들지 않았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과 재무부 장관을 지낸 로렌스 서머스는 “미국의 역할은 물건을 만드는 것보다 지식과 서비스에 기반해 글로벌 경제를 먹여살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제조업체 또한 생산 등 저부가 기능은 임금이 저렴한 해외 신흥개발국으로 이전하는 오프쇼어링(off-shoring) 전략에 치중하고 금융, 정보기술(IT) 등 서비스부문에 초점을 맞췄다.
中 ‘세계의 공장’으로서 매력 상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이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경제·산업계 리더들은 제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로는 몇 가지를 꼽을 수 있다. 무엇보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제조업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국가, 특히 독일과 일본이 강한 경제 체질을 보여줬다는 점에서다. 2009년 대비 2011년의 고용률 차이를 살펴보면, 제조업 비중이 높은 독일이 2.2%포인트, 일본은 0.7%포인트의 고용률 상승을 보인 반면 스페인 미국 영국 등 제조업 비중이 낮은 국가들은 고용률 하락을 경험했다. 또 금융위기로 경제성장률이 급락한 유럽 국가 중 독일은 2011년 경제성장률(3.1%)이 2007년 수준(3.4%)으로 회복세를 보인 반면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은 그렇지 못했다.
또 중국이 저임금을 기반으로 한 제조 공장으로서의 매력을 상실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미국 컨설팅사 보스턴컨설팅그룹에 따르면(2011년 8월 자료) 2000년 중국의 공장근로자 임금은 미국의 3% 수준이었으나 2005년엔 4%, 2010년엔 9% 수준으로 상승했다. 미국 국내의 셰일가스 개발로 생산비 절감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는 점도 주요 이유다.
셰일혁명에 유턴 蓚?세제혜택도
제조업체들의 인식에도 변화가 있었다. 그동안 주력사업의 영업력을 확대하는 방편으로 치중했던 금융부문으로 인해 글로벌 금융위기 시 모기업까지 어려움을 겪게 됐다는 반성에서 비롯됐다. 제너럴일렉트릭(GE)은 금융부문인 GE캐피털로 인해 글로벌 금융위기 때 신용등급 하락에다 정부 구제금융까지 받는 처지가 됐다. 이에 따라 2009년 6월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은 “금융서비스 부문의 이익 급증에 기댔던 것은 실수였으며, 제조업과 수출에 다시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제조업 유턴 전략을 역설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9월 제조업 활성화 책임자를 지명하고, 2011년 12월 제조업 정책과 실행 프로그램 활동을 조정하는 제조업정책국을 국가경제위원회 산하에 설치했다. 2012년 1월 신년국정연설에서는 미국 내에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제조업체와 국내로 돌아오는 유턴 기업에 공장 이전비용의 20%를 보조하고, 설비투자비용에 대한 조세감면을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하며, 제조업 법인세를 25%로 인하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지난 2월에는 미국 기업이 국외에 보유한 수익 유보금에 일회성으로 14%를 과세하는 일명 ‘이행세(transition tax)’를 부과하고, 해외 수익에는 19% 세금을 매길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제조업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인 2010~2013년과 이전인 2005~2008년의 누적 고정자산투자액을 비교해 보면, 민간부문 총투자액은 -9.1%로 금융위기 이전 실적을 회복하지 못한 반면 제조업은 9% 증가했다. 연구개발(R&D) 투자도 급증하고 있다. 제조업체의 2010~2013년 R&D 투자 누적액은 2005~2008년 대비 18.8% 증가율을 보였다. 정부의 R&D 예산도 2010~2014년에 2004~2008년의 누적투자액 대비 10.4%나 증가했다. 특히 정부의 14개 R&D부문 중에서도 산업 제품 및 제조공정을 대상으로 하는 산업생산기술 R&D 예산은 43.3%로 급증했다.
제조업하기 좋은 여건이 조성되면서 해외로 나갔던 미국 업체들도 유턴하고 있다. 미국 비영리기관인 리쇼어링 이니셔티브에 따르면 2003년에는 제조업 일자리 15만개가 미국 밖으로 나갔고, 리쇼어링과 외국인직접투자로 생겨난 일자리는 1만2000개에 불과해 결국 일자리 약 14만개가 줄었다. 그런데 지난해에는 오프쇼어링으로 일자리 3만~5만개가 줄어든 반면 리쇼어링으로 일자리 6만개가 생겨나 1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순증했다. 리쇼어링 업종으로는 운송·전기기기 및 가전, 컴퓨터 및 전자제품, 기계류, 섬유류 등의 업체가 51%였으며, 이들이 늘어난 일자리의 80%를 차지했다. 그리고 이들 리쇼어링 업체의 50% 이상이 중국으로 나갔던 업체로 나타났다.
지난 몇 개월 사이 제조업 강국은 더 강화된 정책을 경쟁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제조 혁신을 가속화하는 ‘신행정 행동계획’을 발표했다. 독일은 올 4월 ‘인더스트리 4.0’의 추진 주체를 산업협회에서 정부로 변경했다. 5월에는 중국이 2025년 세계 제조업 2대 강국 진입을 목표로 하는 ‘중국제조 2025’ 계획을 수립했고, 6월에는 일본이 경기침체 극복을 목표로 했던 ‘일본재흥전략’을 개정, 미래 투자 및 생산성 혁명으로 전환한 ‘일본재흥전략 개정 2015’를 내놓았다.
한국 ‘골든타임’이 지나간다
이처럼 주요 국가의 제조업 르네상 ?정책이 무르익을수록 한국 제조업의 설자리는 점점 줄어들 것으로 우려된다. 한국이 제조업 경쟁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골든타임’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정부가 추진 중인 ‘제조업 혁신 3.0 전략’을 재검토해 경쟁력을 조속히 확충해야 한다. 제조업 투자를 확대하고 창업 및 신제품의 시장 진입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규제개혁에 나서야 한다. 신흥국 시장을 목표로 제품을 개발, 경쟁기반을 확보한 뒤 선진국 시장에 진출하는 ‘역(逆)혁신 전략’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 기술확보형 R&D는 물론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는 수요지향 R&D에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장균 <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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