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년, 다시 기업가 정신이다] 노루페인트-건설화학공업

입력 2015-08-16 18:48   수정 2015-08-17 11:29

'해방둥이 기업'의 도전과 열정 (5·끝)

노루페인트, 잉크로 출발한 컬러디자인사…매출 1조4천억 그룹 성장
건설화학공업 "각하, 페인트만 하겠습니다"…70년 페인트사업 '외길'



[ 김정은 기자 ] 페인트 업계 2위(시장점유율 20%) 노루페인트와 4위(12%) 건설화학공업(브랜드 제비표페인트)은 나란히 창업 70년을 맞았다. 창업 당시만 해도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 동물을 기업 상징물로 삼았다. 이들은 한우물 경영, 내실 경영으로 70년간 한국 산업화에 기여했다.

노루페인트

“한강철교 아래 모래사장에 솥 네 개를 설치하고 점도가 다른 바니시(수지 용액)를 끓여봅시다. 냄새가 심하니 새벽에 하는 게 좋겠어요.”

국내 최초의 인쇄잉크를 만드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해방 직후 출판물이 쏟아졌으나 일본인 기술자들이 빠져나간 직후여서 업계는 물량을 제대로 대지 못했다. 한정대 노루페인트 창업주는 원료인 바니시를 자전거에 싣고 공장으로 달렸다. 그렇게 생산된 잉크는 화폐와 교과서에 80% 이상 들어갔다. 1945년 대한오브세트잉크로 출발한 노루페인트는 현재 계열사 17개(해외 8개)가 매출 1조4000여억원을 올리는 화학그룹으로 성장했다.

●인쇄잉크에서 페인트로

일본 오사카공고 응용화학과를 졸업한 뒤 후지화학연구소에서 일한 한 창업주는 1945년 서울 회현동에 국내 최초의 잉크회사 대한오브세트잉크를 세웠다. 회사는 번창했지만 잉크 제조업에 한계가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페인트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인쇄잉크와 페인트는 생산시설, 제조과정 등이 비슷해 원료와 제조기술 노하우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었다. 1953년 해외 도료공장을 돌아보던 한 창업주는 독일 본의 한 화랑에서 노루 그림을 보고, ‘유순한 동물 노루처럼 사랑받는 회사로 키워야겠다’는 생각에 사명을 노루페인트라고 지었다.

●농협창고와 연출판매

1960년대 초 도료를 미군에 납품했으나 1963년 미국 정부의 ‘바이 아메리칸(자국산 제품 장려) 정책’으로 군납이 중단됐다. 고심하던 한 창업주는 머리를 식힐 겸 근교에 나갔다가 칠이 벗겨지고 녹슨 농협창고를 봤다. 직원을 소집해 “전국 농협창고를 우리가 개발한 함석용 도료 ‘갈바온’을 사용해 무료로 칠해주자”며 비포(before)와 애프터(after) 사진을 찍어 영업에 활용하라고 지시했다. 달구지로 페인트 캔을 실어 날랐다. 정성에 감동한 농협중앙회는 도장 시공까지 노루페인트에 맡겼다.

이 ‘연출판매’는 노루가 2013년 홈쇼핑에서 판매한 ‘컬러메이트 디자인하우스’의 시초가 됐다. 집 분위기에 맞춰 각 방의 색상을 제안하고, 시공 및 사후관리까지 해주는 300만원짜리 페인트 인테리어 패키지를 업계 최초로 선보였다. 농협창고를 연출했던 노하우가 꾸준히 발전한 결과였다.

1970년대 경제개발이 시작됐고 박정희 대통령의 석유화학 육성책,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조선업의 급성장, 대규모 신도시 건설과 중동지역 건설붐 등으로 사업은 순항했다. 1980년 2세 경영을 시작한 장남 한영재 회장은 차근차근 회사를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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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믿고 자진해 정리해고

하지만 1998년 큰 위기를 맞았다. 외환위기로 “노루는 거의 망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기아자동차 부도가 결정적이었다. 당시 노루는 도료 생산량의 90%를 기아에 공급하고 있었다. 창립 53년 만에 처음 적자를 내기도 했다. 먼저 결단을 내린 건 직원들이었다. 노동조합이 먼저 정리해고를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직원들은 자진해 회사를 떠났고, 1080명이던 직원은 650명으로 줄었다.

직원들이 믿은 것은 “회사가 살아나면 모두 복직시키겠다”는 한 회장의 약속 하나였다. 동료를 떠나보낸 직원들은 앞다퉈 상여금을 반납했다. 연월차 수당, 특근비도 받지 않았다. 경영상황은 빠르게 회복됐다. 한 회장은 약속을 잊지 않았다. 해고 이듬해부터 복직을 시작해 해고자의 95%를 회사로 다시 불러들였다.

노루페인트 노조는 1987년 설립 이후 분규 한 번 없이 임단협을 타결했다. 노사협의회에선 분기별 손익현황 등 경영정보가 공개된다. 신뢰에 바탕을 둔 상생관계라 가능한 일이다.

건설화학공업

“페인트 생산공장이 잘돼 있네. 자동차 제조업으로 사업분야를 넓혀보는 건 어때?”(박정희 대통령)

“각하, 저희는 페인트 제조업에만 전념하고 싶습니다.”(황학구 건설화학공업 창업주)

1966년 부산 가야동에 있는 건설화학공업의 제비표페인트 생산공장을 둘러보던 박정희 대통령이 느닷없이 황학구 창업주에게 사업 다각화를 권했다. 황 창업주는 “한국 도료화학 발전에 이바지하고 싶다”며 대통령의 제안을 어렵게 거절했다.

제비표페인트 브랜드로 잘 알려진 건설화학공업의 기업이념은 ‘승리공신(勝利工神)’.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한 제조업의 승리’란 뜻이다. 건설화학공업은 1945년 12월 황 창업주가 부산 초량동에 세운 페인트 가게 남선도료상회로 시작했다. 지금은 계열사 8개, 임직원 1870명에 매출은 9000억원에 이르는 강남그룹으로 성장했다.

●제비와 페인트의 공통점

경북 구미에서 유년기를 보낸 황 창업주는 새를 좋아했다. 하늘을 향해 힘차게 비상하는 제비를 보며 꿈을 키웠다고 한다. 제비를 상표로 선택한 것도 그다. 그는 “제비는 흥부전에 나오는데 은혜에 보답하는 행운의 상징”이라며 “한 번 칠하면 오래 유지돼야 하는 페인트 속성에도 맞는 정직한 이미지”라고 의미를 설명하기도 했다. 강남그룹 이름도 ‘봄이 되면 어김없이 강남으로 돌아온다’는 의미로 지었다.

성장의 계기는 가정용 성냥이었다. ‘닭표성냥’은 이렇다 할 가정용 성냥이 없던 시절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전력 사정이 좋지 않아 호롱불을 켜던 집이 많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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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국내 최초 기록

건설화학공업엔 수많은 ‘국내 최초’ 수식어가 붙는다. 1962년 철도용 합성수지를 최초로 국산화해 철도 객차에 사용했다. 1960~1970년대 신진자동차, 현대 피아트 등 국산 승용차에도 썼다. 국산 냉장고 1호인 금성사(현 LG) 냉장고와 선풍기도 제비표로 단장했다.

1965년 선박용 도료를 개발해 특허를 받았고, 1981년엔 경기 안양시에 도료종합연구소를 세웠다. 대기업들이 본격적으로 대규모 연구소를 세우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이었다. 대기업보다 먼저 연구개발(R&D) 투자를 시작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외환위기 때도 구조조정 없어

‘벗겨지지 않아요, 변하지도 않아요.’ 1980년대를 보낸 세대라면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여성이 등장하는 이 광고가 익숙할 것이다. 1985년 취임한 창업주의 차남 고(故) 황성호 회장은 중국 등 해외에 진출하고 다양한 제품을 내놓으며 공격적으로 회사를 이끌었다. 1990년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 복원작업에도 참여했다.

황 회장은 1998년 외환위기 때 직원을 한 사람도 줄이지 않았다. 당시 그는 “임직원이 자발적으로 반납한 상여금도 다시 돌려주라”고 지시한 뒤 “직원과 회사는 하나”라는 이야기를 남겼다. 3년 전 황 회장이 갑작스레 세상을 뜬 뒤 두 아들 중운씨와 중호씨가 각각 건설화학공업과 계열사의 경영을 맡고 있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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