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병훈 기자 ] 정신분열증(조현병)으로 병원 치료를 받은 전력이 있는 최모씨(62)는 지난해 조카를 칼로 찔러 살해했다. 조카가 사람이 아닌 로봇이고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는 망상 때문이었다. 그는 경찰에 잡혀 와서도 “고양이를 죽였다”고 말하는 등 심각한 정신이상 증세를 보였다. 이 사건 항소심 재판을 맡은 대구고등법원 형사1부(부장판사 이범균)는 “평소 앓고 있던 조현병이 발현돼 범행을 저지르기는 했지만 범행 내용과 결과가 매우 중대하다”며 치료감호 외에도 징역 12년을 선고했고 최씨가 상고를 포기해 형이 확정됐다.
심신장애 때문에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법원에서 중형을 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관련 법에 따르면 피고인이 범죄를 저지를 당시 사물 변별력이나 의사결정 능력이 전혀 없는 ‘심신상실 상태’였다면 법원은 무죄를, 그럴 능력이 떨어진 ‘심신미약 상태’였다면 감형해야 한다. 행위가 아무리 중대한 결과를 가져왔더라도 ‘책임 조각(책임이 없어짐)’이 되면 처벌하지 않는다는 근대 형사법의 원칙에 따라서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정신병을 앓고 있었음에도 법원에서 중형을 선고받는 사례가 심심찮게 눈에 띈다. 지난달 치료감호 중에 달아난 뒤 추가 성범죄를 저지르고 자수한 김모씨도 성충동 관련 장애를 겪고 있었으나 2012년 당시 특수강간죄로 징역 15년을 받았다.
서울에서 일하는 한 판사는 “과거에는 정신병으로 살인을 해도 대체로 집행유예가 나왔지만 요즘은 그런 일이 거의 없다”며 “피고인의 상태를 자세히 살펴보면 책임을 묻기 어려운 면이 있어도 비난 여론 등 때문에 무죄로 돌리기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묻지마 살인을 한 뒤 법원에 와서 심신상실을 주장하는 등 인명 경시 풍조가 만연해 중형을 선고하는 기조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이런 판결 흐름에 반대하는 견해도 있다. 한 변호사는 “당장 여론 악화라는 소낙비를 피하기 위해 근대 형사법의 원칙을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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