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지출 감소 상쇄할 '안전판'도 없는 경제상황
[ 임현우 / 안재석 기자 ] 김영란법처럼 기업의 지갑을 닫게 하는 조치는 늘 내수에 악재로 작용했다. 자주 거론되는 사례는 2004년의 접대비 실명제 도입이다. 제도가 시행되자마자 기업의 접대비 규모는 5조4372억원(2003년)에서 5조1626억원(2004년)으로 5%가량 감소했다. 접대비가 10조원에 육박하는 지금 상황에 대입하면 김영란법 시행으로 5000억원가량이 사라진다는 계산이 나온다.
기업 씀씀이 감소는 곧바로 내수 지표에도 반영된다. 접대비 실명제 시행으로 2004년 1분기 실질 민간소비 증가율은 -0.9%를 기록했다. 그해 2분기(0.4%)와 3분기(0.2%)에도 거의 제자리걸음을 했다. 반대로 접대비 실명제가 폐지된 직후인 2009년 2분기 실질 민간소비 증가율은 3.3%로 뛰어올랐다.
김영란법을 시행하기엔 경제 상황도 여의치 않다. 기업 지출 감소분을 상쇄할 만한 안전판이 없다는 지적이다. 가계는 금융부채와 노후 걱정으로 씀씀이를 늘릴 여력이 없다. 가계의 가처분소득 중 소비가 차지하는 비율인 평균 소비성향은 지난 2분기 71.6%로 떨어졌다.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3년 이후 최저치다.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지난해 2분기보다도 1.7%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연속된 재정적자로 정부의 체력도 바닥이다. 지나치게 과장됐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김영란법으로 경제성장률이 1~2%포인트 줄어들 것”(정갑윤 국회부의장)이라는 우려까지 나오는 이유다.
내수 충격이 김영란법 시행 이전부터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대기업 관계자는 “적지 않은 기업이 내년 연간 예산을 짜면서 김영란법을 반영할 공산이 크다”며 “김영란법은 내년 9월부터 시행될 예정이지만 파장은 그 이전인 설 명절부터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임현우/안재석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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