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발견된 분청사기 140여점도 15세기 초로 추정
[ 박상익 기자 ]
전남 나주에서 서울 광흥창으로 세곡을 실어나르던 조운선(漕運船)이 최초로 확인됐다.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10월 충남 태안 마도 해역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고선박 ‘마도4호선’이 지방에서 거둬들인 조세미를 수도로 옮기던 조운선임이 밝혀졌다”고 26일 발표했다. 조세미를 지방의 창고에서 경창으로 운반했던 조운선의 실체가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소는 “지난 4월부터 정밀 발굴조사를 한 결과 ‘廣興倉’이라고 적힌 목간(木簡)과 ‘內贍(내섬)’이라고 쓰인 분청사기 등 300여점의 유물이 나왔다”며 “유물과 선박 구조 등을 통해 이 배가 15세기 초 조선시대 조운선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마도4호선 이전 한반도 주변 바다에서 발굴된 고선박은 모두 13척으로 고려시대 10척, 13~14세기 중국 선박 2척, 통일신라시대 선박 1척(영흥도선)이다.
마도4호선은 현재 마도 북동쪽 해역 수심 9~15m 지점에 묻혀 있다. 길이 13m, 폭 5m, 선심 2m 규모로 바닥이 평평한 평저선(平低船)이다. 배의 좌우 외판재를 연결하는 가룡목(加龍木)이 2m 간격으로 6곳에 설치돼 있으며 고려시대 선박보다 두껍고 강한 목재를 사용해 한층 견고하고 세련됐다는 게 연구소의 설명이다.
마도4호선이 조운선이라는 가장 확실한 근거는 어른 손바닥 길이만한 나뭇조각에 먹으로 글씨를 쓴 목간이다. 곡식 가마니에 매단 화물표 역할을 한 목간 60여점 대부분에는 출발지인 나주와 도착지인 광흥창을 의미하는 ‘羅州廣興倉(나주광흥창)’이란 글자가 적혀 있다. 화물의 종류와 수량이 적힌 목간도 발견됐다. 문환석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수중발굴과장은 “이전에 발굴된 마도1, 2, 3호선 목간에는 화물이 고려 권력자나 개인에게 가는 것이란 표시가 돼 있어 조운선으로 보기 힘들었다”며 “마도4호선은 국가 기관인 광흥창으로 보내는 것이란 표시가 있어 조운선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목간들은 동아시아에서 발견된 적이 없는 15세기의 것으로 학계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목간들은 바닷속 갯벌에 묻혀 있어 600년 가까이 형체를 보존할 수 있었다. 임경희 문화재청 학예연구사는 “15세기에는 종이 보급이 활발해져 일상생활에 목간을 쓸 필요가 없었지만 화물에 매달아 놓기에는 종이보다 목간이 더 유용하게 쓰였다”고 말했다.
마도4호선이 15세기 초반 좌초됐다고 추정할 수 있는 근거는 함께 발견된 140여점의 분청사기다. 분청사기 3점에 적힌 ‘內贍’이라는 글자는 조선시대 궁궐 물품을 관리하던 내섬시(內贍寺)를 戀磯? 태종은 즉위 17년째였던 1417년 “공물로 바치는 그릇에는 이를 사용할 관청 이름을 표기하라”고 지시했다. 내섬은 이 그릇을 사용한 관청 중 하나다. 세종 3년인 1421년에는 “궁궐에 납품되는 그릇들의 품질이 좋지 않으니 그릇에 제작자의 이름을 적으라”고 명령했다. 박경자 문화재청 감정위원은 “이번에 발견된 분청사기에는 관청 이름은 적혀 있지만 제작 지역이나 제작자 이름은 없는 것으로 미뤄 분청사기가 1417~1421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목간과 분청사기 외에 조세미로 실었던 볍쌀과 보리,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전남 나주목 토산품으로 기록된 대나무와 숫돌도 함께 확인됐다. 조선시대 도량형이었던 ‘섬(石)’의 단위를 짐작할 수 있는 가마니도 나왔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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