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재연 기자 ]
“저 역시 처음에는 얼마나 도망가려고 했는지 몰라요. 처음엔 ‘3년만’ 하고 시작했다가 후임자가 나타나지 않아 다시 ‘2년만’ 했는데, 5년이 지나도 후임자는 안 나타나고 그 사이 환자는 2만명이나 돼버렸죠. 그래서 ‘이 사람들 버리고 내가 무슨 팔자 고치겠다고…’ 싶어서 생각을 고쳐먹은 것뿐입니다.”
1987년 서울 신림동 판자촌에 극빈환자와 노숙자, 행려병자 등을 무료로 치료해주는 요셉의원을 세운 선우경식 원장(1945~2008)이 20년 동안 요셉의원을 떠나지 못했던 이유다. 가톨릭대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까지 다녀와 서울의 한 종합병원 내과 과장으로 일하던 그는 1983년 우연히 신림동에 의료봉사를 나갔다가 ‘사랑의 발길’을 끊지 못했다. 길거리를 떠도는 수십만명의 노숙자에게 “약 챙겨 먹어라” “술 마시지 말라”고 잔소리를 늘어놓던 ‘영등포의 슈바이처’로 불렸다.
《우리 곁의 성자들》(김한수 지음, 기파랑 펴냄)은 종교전문기자가 만난 우리 주변의 성자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선우경식 원장을 비롯해 ‘1인 10역 톤즈의 성자’였던 고 이태석 신부, 재난 현장이라면 어디든 달려가는 조현삼 서울광염교회 목사, 무소유를 실천했던 법정 스님, ‘무한경쟁’보다는 ‘무한향상’의 삶을 살라고 강조하는 고우 스님 등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된 20명의 이야기가 감동을 준다. 딱딱한 전기(傳記)가 아니다. 저자의 눈에 비친 ‘성자’들의 인간적인 면모와 느낌 등을 기록했다.
조현삼 목사는 ‘재난 현장의 사나이’다. 중국 쓰촨성 지진(2008년), 필리핀 태풍 하이옌(2013년) 등 국제 재난뉴스의 현장엔 언제나 그가 결성한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이 있다.
법정 스님의 처소였던 전남 순천 송광사 불일암에는 스님이 생전에 직접 만든 ‘빠삐용 의자’가 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절해고도(絶海孤島)에 갇혔던 빠삐용의 죄명은 ‘인생을 낭비한 죄’였다. 영화 ‘빠삐용’을 보고 이 의자를 만들었다는 스님은 평소 “인생을 낭비하고 있지 않은지 이 의자에 앉으면서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저자는 “엄벙덤벙 살아가는 인생들에겐 뼈아픈 죽비소리”라고 표현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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