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패션브랜드 '파슬' 창업자
스위스산 부품에 가격 낮춘 시계 내놓고
'미국서 미국인이 만든 시계' 마케팅
550달러 제품 2500개 8일 만에 '완판'
자동차산업 메카 디트로이트 파산으로
제조업의 쇠퇴 안타까워한 소비자 공략
미국의 자존심 부활시킨 제품으로 '우뚝'
[ 박해영 기자 ] 미국의 인기 패션브랜드 ‘파슬(Fossil)’을 창업한 톰 카소티스는 2010년 형인 코스타에게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맡기고 회장으로 물러났다. 1984년 복고풍 디자인으로 중저가 시계시장을 공략해 돌풍을 일으킨 그는 파슬을 연매출 32억달러(약 3조8500억원)의 종합 패션브랜드로 성장시켰다. 26년 만에 파슬을 떠난 그는 벤처투자회사 베드록 경영에 전념하며 다음 사업을 구상했다. “스위스 명품급의 품질과 미국인의 가치관을 혼합한 시계 브랜드를 선보이면 어떨까”를 고민하던 그에게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100년 넘은 미국의 대표적 구두광택제 브랜드인 ‘샤이놀라(Shinola)’ 이름으로 시계를 만드는 것이었다. ‘메이드 인 USA’ 마케팅으로 최근 미국 소비자에게 사랑받고 있는 패션브랜드 샤이놀라는 이렇게 재탄생했다.
추억의 구두약 브랜드를 최고급 시계로 탈바꿈
샤이놀라가 미국 소비자를 처음 만난 것은 1907년이다. 뉴욕주 로체스터에서 출발한 구두약 샤이놀라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군들에게 보급품으로 지급되면서 해외에까지 이름을 알렸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1940년대 미국에선 “샤이놀라도 모르는 사람”이란 말이 “아무 것도 아는 게 없는 바보”란 뜻의 유행어로 쓰일 정도였다. 이후 경쟁사의 출현과 구두약 수요 감소 등으로 경영난에 빠진 샤이놀라는 1960년 공장 문을 닫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011년 샤이놀라 브랜드를 사들인 카소티스는 ‘미국 마케팅’을 기획했다. 미국인의 향수가 남아있는 브랜드 이름에 “이 제품은 미국에서 만들었다”는 슬로건을 결합하면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일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샤이놀라 출범을 앞두고 조사한 설문 결과는 이런 믿음을 더 강하게 했다. “5달러짜리 중국산 볼펜과 10달러짜리 미국산 볼펜 중 어느 것을 사겠느냐”는 질문에 과반수의 소비자는 싼 제품을 택했다. 하지만 “품질 좋은 미국산이라면 중국산보다 더 지급할 용의가 있느냐”는 항목에선 긍정적인 답변이 많았다는 점에 카소티스는 주목했다.
30년 가까이 시계업에서 잔뼈가 굵은 카소티스는 △미국에서 제조·조립하고 △최고급 품질이면서 △가격은 싼 시계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노하우와 네트워크를 총동원했다. 시계의 정확도를 결정짓는 핵심 부품인 무브먼트는 스위스 론다에서 전량 들여오기로 계약을 맺었다. 가격 거품을 빼기 위해 유명인을 내세우는 광고는 처음부터 계획에서 뺐다. 대신 스위스에서 시계 장인들을 데려와 미국 조립공장의 직원들을 몇 개월씩 훈련시키는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이렇게 원가를 아껴 스위스산이라면 2000달러 이상 가격을 매길 시계를 평균 600달러에 내놓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미국의 자존심 내세운 마케팅 적중
남은 문제는 공장을 어디에 세울 것인가였다. 카소티스는 미국 공업화의 상징인 디트로이트를 점찍었다. 미국 자동차산업의 메카로 한때 180만명의 인구를 자랑하다가 자동차산업의 쇠퇴로 70만명까지 쪼그라든 도시였다. 방만한 재정 운용 탓에 디트로이트는 2011년 당시 파산 직전이었다. 카소티스는 “미국 제조업의 쇠퇴를 안타까워하는 미국 소비자들은 디트로이트의 부활을 염원할 것”이라며 디트로이트에 본사를 두기로 했다. 이렇게 정해진 샤이놀라 공장은 과거 제너럴모터스(GM)의 리서치랩으로 유명한 디트로이트의 12층 건물에 들어섰다. ‘아르고노 빌딩’으로 불리는 이 건물에서 GM은 1930년대 세계 최초로 자동변속기를 발명하며 자동차 기술을 선도했다.
샤이놀라는 ‘미국에서, 미국인이 만든 제품’이란 점을 강조한다. 회사 홈페이지에는 주요 직원들의 고향과 경력을 소개하는 코너를 따로 만들었다. 시계 본체와 뒷면에는 디트로이트 문구를 새겼다. 2013년 3월 2500개를 제작해 개당 550달러를 매긴 첫 제품은 온라인으로만 팔았는데도 8일 만에 매진됐다. 이후 샤이놀라는 뉴욕, 워싱턴DC,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미니애폴리스, 영국 런던 등에 매장을 내고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샤이놀라는 시계 외에도 자전거, 가방 옷 등 가죽제품, 문구류 등으로 제품군을 확대했다. 가죽은 미주리주에서, 문구류 재료는 미시간주에서, 자전거 프레임은 위스콘신주에서 가져온다고 소비자에게 알리며 ‘메이드 인 USA’를 내세운다. 맞춤형으로 제작하는 자전거는 2000달러가 넘는 고가다. 소비자는 미국 제조업의 자존심을 살리는 제품이라고 생각하며 지갑을 기꺼이 연다.
샤이놀라는 디트로이트 본사에서 연간 50만개의 시계를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디트로이트는 올해 1월 파산에서 졸업했다. 파슬의 럭셔리부문 사장 출신으로 샤이놀라 CEO를 맡은 스티브 벅은 미국 패션지와의 인터뷰에서 “디트로이트를 거점으로 미국의 제조업 부활을 상징하는 마케팅은 계속될 것”이라며 “10년 후면 디트로이트가 완전히 달라져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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