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심화되는 '통화 샌드위치', 외환위기 데자뷔 차단해야

입력 2015-08-30 18:30  

통화 전쟁에 불안한 한국

94년 위안화 절하, 95년 미국 금리인상·역플라자합의
97년 외환위기 몰고온 'G2 리스크' 재연되는 형국
진퇴양난 국내 경제…'자본이동관리원칙' 활용 검토를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슈퍼달러와 초엔저가 2~3년 지속되고
위안화도 한두 차례 더 평가절하되는 최악의 경우를 염두에 둬야 한다"

오정근 < 건국대 특임교수·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



‘중국 리스크’가 글로벌 경제를 강타하고 있다. 중국이 추락하는 수출과 가라앉는 경기를 반등시키기 위해 전격 단행한 지난 11~13일의 위안화 4.60% 평가절하는 오히려 과잉투자, 기업부실, 금융부실 같은 중국 경제의 숨겨진 중병이 얼마나 심각한지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이에 따라 중국 경제와 증시에 대해 신뢰를 잃은 투자자들이 연일 중국 증시를 떠나면서 주가는 평가절하 이후에도 폭락했다. 지난 25일 상하이종합지수가 3000선 밑으로 떨어지자 26일 인민은행은 전격적으로 기준금리와 지급준비율을 또다시 동시에 인하, 간신히 3000선을 회복하는 등 불안한 상황이다.

30년간 지속됐던 10% 고성장기 끝 중국 경제의 과잉투자가 해소되는 데 적어도 수년은 걸릴 것으로 보인다.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해야 하지만 실업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구조조정은 정치사회적 리스크가 커 손도 못 댄 채 통화 공급, 금리 인하에 의존하다가 위안화 국제화를 위해 자제해온 마지막 카드인 위안화 평가절하까지 단행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연말이나 내년 중 두어 차례 더 위안화 가치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래도 안되면 2017년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마저 예견된다. 위안화 평가절하로 촉발된 동아시아 환율전쟁 2라운드는 1라운드보다 더 큰 충격파를 몰고 올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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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화 절하로 2차 환율전쟁 촉발

동아시아 환율전쟁 1라운드는 ‘잃어버린 20년’에서 탈출하려는 일본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에 의해 시작됐다. 2012년 9월 이후 달러 대비 엔화는 38.0% 절하된 데 비해 원화는 3.6% 절하에 그쳐 엔화 대비 원화는 55.3% 절상됐다. 그 결과 일본과 경쟁관계에 있는 한국의 주력 수출제품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상실, 2002~2011년 연평균 15%를 기록하던 수출증가율이 올 들어 마이너스로 추락하고 있다.

위안화 평가절하로 시작된 동아시아 2차 환율전쟁은 1997년 외환위기 때의 상황과 비슷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에도 경제성장이 지지부진하자 1994년 1월 위안화를 대폭 평가절하(달러당 5.8위안→8.7위안)했다. 1995년 미국은 경기과열을 방지하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고 고베지진으로 타격을 받은 일본은 역(逆)플라자합의로 엔화를 약세로 전환했다. 이후 엔화의 장기 약세는 동아시아 다른 국가들의 경상수지 악화를 초래,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의 원인이 됐다.

앞으로 미국은 제로(0) 수준의 금리를 매우 점진적으로 상향 조정하면서 2~3년에 걸쳐 금리를 정상화할 것이고 그 결과 슈퍼달러와 초엔저 현상도 2~3년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2012년 9월 달러당 77.6엔에서 시작해 120엔대까지 상승한 엔·달러 환율이 140엔대를 웃돌 수도 있다. 1995년 4월 80엔대였던 엔·달러 환율이 1998년 8월 140엔대를 넘어섰던 슈퍼달러와 초엔저 현상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美 금리 인상에 자본 유출 우려

한국은 극심한 경기침체 국면에서 중국 리스크가 대두되고, 임박한 미국 금리 인상으로 급격한 자본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금리를 인상해야 하는 진퇴양난에 직면해 있다. 외화보유액 3조달러가 넘는 중국은 위안화 평가절하를, 일본은 양적 완화를 지속할 전망이므로 원화는 달러화에 대해서는 약세를 보이면서도 엔화와 위안화에 대해서는 강세를 보이는 ‘통화샌드위치 현상’마저 나타날 전망이다.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슈퍼달러와 초엔저가 앞으로 2~3년은 더 지속되고 위안화도 한두 차례 더 평가절하될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앞으로 2~3년간 최악의 경우를 상정한 ‘컨틴전시 플랜(긴급 대응계획)’이 필요하다.

외화유동성 점검이 1차적 과제다. 통화별, 만기별, 자금 종류별로 매일 점검하는 ‘외화유동성 관리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최악의 리스크를 가정한 소요 외환보유액’(RAR=Reserve at Risk) 개념을 도입해 소요 외환보유액을 전망, 확보하고 우호국과의 통화스와프 등 2선 외화유동성도 확보해야 한다. 한·중·일 통화금융협력을 강화할 필요도 있다. 환율정책은 엔화 약세에 부응한 적절한 속도의 점진적 원화 약세는 받아들이되 급격한 절하는 큰 폭의 환차손을 우려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이탈을 초래할 수도 있으므로 점진적인 균형 접근이 바람직하다. 원화 약세를 진정시킨다고 여유도 없는 외환보유액을 이용해 외환시장에 무리하게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불안정한 자본이동에 대한 거시건전성 규제를 강화할 필요도 있다. 현재 거시건전성 규제 3종세트는 자본 유입에 대한 거시건전성 규제장치다. 과도한 자본 유출에 대해서도 거시건전성 차원에서 규제할 수 있는 부분이 없는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자본이동 규제와 관련, 내외국인을 차별하는 자본통제는 안 되지만 내외국인 차별 없는 거시건전성 규제는 용인될 수 있다는 국제적인 컨센서스가 2011년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와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자본이동관리원칙’이다. 이런 국제적 합의를 최대한 활용할 여지는 없는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국제금융외교도 중요하다. 원활한 국제금융외교 수행을 위해 청와대에 국제금융보좌관을 두고 미국의 친(親)한국 국제금융학자와 한국 국제금융학자가 워싱턴에서 세미나를 열고 여론을 조성할 필요도 있다. 금리 인상은 추락하고 있는 경제와 가계부채의 원리금 상환부담을 고려해 불가피한 경우 최소肌【?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

구조개혁, 투자환경 개선 서둘러야

중국 리스크와 미국 금리 인상 등 대외적 리스크에도 대내적으로 경제가 건실하다면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다. 구조개혁과 규제혁파로 기업 투자환경을 개선하고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한국 경제는 잘못하면 1997년과 같은 외환위기를 맞을 수 있는 백척간두에 서 있다. 정파나 좌우이념을 떠나 힘을 모아야 한다. 내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도 과도한 정쟁으로 위기에 처한 경제를 더욱 어렵게 해서는 안된다. 1997년에도 대선이 있었다는 점을 깊이 성찰해야 할 때다.

오정근 < 건국대 특임교수·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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