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자소서? 자소설?

입력 2015-09-03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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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하반기 취업시즌의 막이 올랐다. 올해 채용의 가장 큰 추세는 아무래도 탈(脫)스펙이다. 학력, 학점, 영어, 해외경험, 인턴경력 등 스펙을 보지 않고 에세이나 자기소개서를 통해 직무적합성 내지는 역량을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삼성그룹은 올해부터 도입한 직무적합성평가에서 전공과목 이수기록과 활동경험, 에세이 등을 보고 직무와 무관한 스펙은 일절 반영치 않기로 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자체 개발한 인적성검사(HMAT)와 함께 역사 에세이를 본다. SK그룹은 올해부터 입사지원서에 스펙 관련 항목을 완전히 없애기로 했다. 사진란도 없앴고 학력과 전공, 학점만 기재하게 하고 자기소개서를 통해 뽑는다는 방침이다.

기업들이 앞다퉈 ‘스펙 파괴’에 나서는 데는 무엇보다 정부의 입김이 컸다. 지난해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는 10대그룹 인사담당 임원들을 불러 ‘스펙 초월 채용’ 문화를 확산해달라고 당부했다. 100대 기업 입사지원서의 스펙 기재 사항을 조사해 발표하겠다고도 했다. 물론 천편일률 스펙으로는 원하는 인재를 뽑기 어렵다는 기업 나름의 필요성도 작용했을 것이다.

문제는 스펙의 굴레에서 벗어난 취업준비생들이 이제는 자소서나 에세이 때문에 등골이 빠지게 생겼다는 것이다. 정해준 답만 푸는 데 익숙한 젊은이들에게 자소서는 큰 부담이다. 인크루트 조사에서 자소서 때문에 입사를 포기한 경험이 있다는 취준생이 75%나 된다. 무얼 써야할지도 고민인 데다가 솔직히 특별히 어필할 거리도 없다. 그러다 보니 돈을 받고 자기소개 문항을 분석해주거나 특정 기업에 맞춘 작성 전략을 알려주는 학원까지 생겨났다. 다양한 학생을 뽑는다고 대입에서 수시 비중을 높이니 논술학원을 비롯해 온갖 수시 대비 학원이 생긴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결국 진짜 자신의 모습보다는 ‘남에게 이렇게 보였으면 좋겠다’는 가공의 이미지를 만들어 거짓말을 쓰게 된다. 자소서를 ‘자소설’이라고 자조 섞인 말로 부르는 것도 그래서다. 기업 입장에서도 자소서는 골칫거리다. 수많은 지원자들이 써낸 엄청난 분량을 읽는 것만도 보통 일이 아닌 데다 이를 통해 제대로 된 지원자를 가려낸다는 보장도 없다. 그보다는 테샛(TESAT)처럼 시장경제에 대한 종합적 지식과 올바른 태도를 평가하는 테스트를 기업이 자유롭게 선발에 활용토록 하는 게 훨씬 객관적 방법이다. 채용 방식에는 정답이 있을 수 없다. 정부가 간섭하는 것보다는 기업이 원하는 대로 뽑게끔 내버려두는 게 그나마 최선이 아닐까 싶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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