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국감 호출, 노조는 시위…'뒤탈' 두려워 M&A 접는 기업들
(2) 기업 사업재편에 사회적 합의 요구하는 나라
홈플러스 인수 MBK에까지 '먹튀' 비난 공세
"기업 산다고 죄인 취급, 한국밖에 없을 것"
노조, 인수자 '퇴짜' 놓고 거액 위로금 요구
[ 하수정/정영효 기자 ] 국내 최대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MBK파트너스는 이달 초 참여연대 한국소비자연맹 등 13개 시민단체로부터 질의서를 받았다. 국회에서는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하자는 야당의 목소리가 나왔다.
난데없이 시민단체와 국회가 PEF 운용사를 주목한 것은 국내 2위 대형마트인 홈플러스 인수 기업으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이들은 MBK파트너스에 홈플러스 직원의 고용보장뿐 아니라 대주주(영국 테스코)의 ‘먹튀’ 문제, 고객정보 불법 유출 문제까지 대책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 PEF 대표는 “공개경쟁 입찰에서 정당한 절차를 거쳐 선정된 우선협상대상자를 국정감사에 세우려 하고 죄인 취급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 것”이라며 혀를 찼다. 한국 기업들이 구조조정과 사업 재편을 미적거리는 이유에는 이 같은 경영 외적 요인이 많다. 노조는 물론 국회와 이익단체의 눈치까지 봐야 하기 때문이다. 주식이나 자산을 사고파는 인수합병(M&A)은 완전한 사적 계약임에도 사회적 합의와 공적 책임을 요구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홈플러스 매각 건만 해도 국회에서 ‘사모펀드(PEF)에 홈플러스를 매각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토론회가 열리는가 하면 민주노총 등 70여개 노동, 시민단체들이 ‘투기자본인 사모펀드에 홈플러스를 매각하면 안 된다’는 내용의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홈플러스 주주인 테스코뿐 아니라 새 주인이 될 MBK파트너스까지 ‘먹튀’ 세력이라는 비난을 듣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MBK파트너스에 투자자로 참여한 국민연금은 졸지에 ‘먹튀’의 조력자라는 멍에를 뒤집어쓰게 됐다.
○M&A 걸림돌 곳곳에 널려
인수합병(M&A) 성공 여부는 ‘계약’이 아닌 ‘인수 후 통합작업(PMI)’에서 갈린다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무려 5년 만에 성사된 하나·외환은행 합병은 ‘난해한 PMI의 결정판’으로 꼽힌다. 하나금융그룹은 2010년 11월 외환은행 지분 인수계약을 맺은 지 15개월 만에 금융위원회로부터 인수 승인을 받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2012년 외환은행의 독립경영을 5년간 보장하는 ‘2·17합의서’를 노조와 체결한 하나금융은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은행의 수익성이 낮아지자 지난해 7월 외환은행과의 조기 통합을 추진했다. 이에 강하게 반발한 외환은행 노조는 ‘2·17합의서’를 근거로 ‘통합작업 중지’ 가처분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2월 법원은 노조 측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하나금융의 이의신청을 법원이 겨우 받아들였고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김근용 외환은행 노조위원장과 직접 물밑접촉을 하는 등 온갖 노력 끝에 지난 1일 ‘KEB하나은행’이 공식 출범할 수 있었다.
PMI가 험난하기는 삼성·한화 ‘빅딜’도 마찬가지다. 한화그룹에 넘어가는 삼성테크윈·탈레스·토탈·종합화학 등 4개 기업 직원들이 강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삼성테크윈(현 한화테크윈) 노조는 올초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에 가입해 삼성 계열사로는 처음으로 총파업에 들어갔고 공장은 석 달 넘게 정상 가동하지 못했다. 한 회계법인의 재무자문담당 대표는 “얼마 전 한 계열사를 팔아 다른 기업 인수를 추진하던 대기업의 경영진이 삼성·한화 빅딜 과정을 보더니 ‘너무 골치가 아플 것 같다’며 사업 재편 프로젝트를 포기했다”며 “언론, 정치권, 사법부까지 기업 경영의 유연성보다는 사회적 합의를 중시하는 분위기에선 선제적이고 자발적인 구조개편이 일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M&A 좌지우지하는 노조
기업 사업 재편을 가로막는 요인 중 하나로 비타협적인 노조를 꼽는다. 실제 노조의 반대로 M&A 계약이 깨진 사례도 있다. 지난해 김치냉장고 브랜드 딤채로 유명한 위니아만도는 세 번이나 인수 후보가 바뀌었다. 지난해 3월 KG그룹은 위니아만도 최대주주인 유럽계 사모펀드 시티벤처캐피털(CVC)과 지분 100% 양수도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가 보름여 만에 인수를 포기했다. 노조 측에서 KG그룹과 위니아만도 간 사업적 연관성이 없다는 점을 들어 경영진의 집 앞에서 집회를 여는 등 강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KG그룹에 이어 위니아만도의 인수전에 뛰어든 현대백화점 역시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위니아만도의 가격이 기업가치 대비 높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노조 측에서 우리사주조합에 지분 5%를 무상 출연해달라는 등 무리한 요구를 한 것도 영향을 줬다. 현대백화점 측에 인수되길 내심 희망했던 위니아만도 노조는 “협상카드로 내걸었던 것뿐인데 현대백화점에서 인수를 철회하는 바람에 당황했다”고 토로했다. 결국 위니아만도는 금속노조를 겪어본 자동차부품업체 대유에이텍에 지난해 말 최종 인수됐다.
○회삿돈 빼먹는 매각 위로금
피인수기업 직원들에게 지급하는 위로금도 M&A를 하려는 기업엔 부담스러운 요인이다. 삼성그룹은 미국 코닝과 합작사업을 끝내면서 삼성코닝 직원들에게 1인당 1억원씩 총 1000억원의 위로금을 지급했고, 삼성·한화 빅딜 때도 삼성 직원들은 3000억~4000억원의 위로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미국계 PEF인 칼라일에 팔린 국내 2위 보안업체인 ADT캡스는 더 노골적이었다. ADT캡스 노조는 대주주인 미국 타이코그룹에 매각대금의 30%를 위로금으로 요구했다. ADT캡스를 2조원에 팔아 막대한 이익을 올렸으니 6000억원을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1인당 얼마씩을 요구하는 건 빈번하지만 아예 매각대금의 30%를 달라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이 과정에서 타이코그룹이 격분해 한때 거래 자체가 무산 일보 직전까지 갔다. 양측의 마찰은 일정 금액의 위로금을 지급하는 선에서 절충이 이뤄졌다. 하지만 2013회계연도에 896억원에 달했던 ADT캡스의 영업이익은 2014회계연도에 452억원으로 반토막났다.
2012년 말 MBK에 인수된 코웨이도 전년도에 1671억원이었던 순이익이 940억원으로 급감했다. 연말 성과급 형식으로 연봉의 100%에 해당하는 위로금을 지급하는 등의 영향이었다.
■사모펀드(PEF)
소수 투자자의 자금을 모아 기업 경영권 등을 인수하고 기업의 가치를 높여 되파는 펀드. 기업들이 인수합병(M&A)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구조조정 매물을 받아줄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수정/정영효 기자 agatha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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