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같이 미쳐야 성공"…직원 개인사도 꼼꼼히 챙겨
골칫거리 전담 구원투수
만년적자 모니터 사업 흑자로…중소형 패널 불량률 확 낮춰
겉으론 '독종' 실제론 '덕장' …한번 일 맡기면 끝까지 신뢰
머리 빠지는 직원에 다가가 카드 주며 "탈모병원 가 봐라"
[ 남윤선/정지은/조영남 기자 ] 2012년 초, 한상범 LG디스플레이 사장(당시 대표이사 부사장)은 같이 일하던 A상무를 경기 파주 공장의 게스트하우스로 불렀다. 대낮이었지만 한 사장은 소주 한 병을 주문했다. 한잔을 쭉 들이켠 한 사장은 A상무에게 “대형 OLED(유기발광다이오드)사업을 해야겠다”고 말했다. A상무는 펄쩍 뛰었다. 당시만 해도 대형 OLED 생산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한 사장은 단호했다. “OLED가 아니면 어떻게 우리가 세계 1등을 할 수 있겠나, OLED 못 하면 너하고 나하고 같이 파주 공장 연못에 빠져 죽자.” 최고경영자(CEO)가 목숨까지 걸면서 확고한 의지를 보이자 A상무는 결국 대형 OLED사업 책임을 맡았다.
1년여 뒤 A상무는 한 사장에게 瑩?한 장을 보냈다. 본인과 직원들이 ‘반나체’로 찬 바다에 뛰어드는 사진이었다. 대형 OLED 생산 개시를 자축하는 세리머니였다. A상무는 “할 수 있는 걸 안 된다고 말해서 사죄의 의미로 바다에 입수했다. 이제 OLED로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문자도 같이 보냈다. A상무의 사진과 문자는 한 사장의 ‘큰형님 리더십’이 신사업을 이끌어낸 대표적 사례로 직원들 사이에 회자됐다.
한 사장의 경영 철학은 ‘불광불급(不狂不及·미치지 않으면 도달하지 못한다)’이다. 그는 LG그룹 CEO 중에서 불같은 성격과 강한 승부욕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한 사장은 혼자만 미치는 독불장군은 아니라는 게 직원들의 평가다. 일을 하기 전 먼저 직원들의 마음을 사고 그 다음 ‘함께 미치는’ 게 한 사장의 스타일이라는 설명이다.
○“사람의 마음을 먼저 사라”
한 사장은 흔히 ‘맹장’으로 묘사된다. 위아래를 막론하고 할 말 있으면 목소리를 높이는 불같은 성격, 한 번 정하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독종 정신 때문이다. 어지간한 재야 고수들은 명함도 못 내미는 엄청난 주량도 그의 이미지를 굳히는 데 한몫했다.
하지만 한 사장과 오래 일해본 직원들은 오히려 한 사장이 ‘덕장’에 가깝다고 한다. 사업을 벌이기 전에 먼저 직원의 마음을 얻는 한 사장의 리더십 스타일 때문이다.
2004년의 일이다. 당시 생산기술센터장이던 한 사장은 중소형 패널을 생산하는 P5 공장장으로 발령 騁年? P5는 수율(전체 생산량 중 출고 가능한 제품 비율)이 가장 낮은 골칫거리 공장이었다. 내심 대형 공장 발령을 원했던 한 사장은 실망감이 컸다고 한다.
당시 P5공장에는 세 개 팀이 있었다. 한 사장이 공장장으로 취임할 당시 한 개 팀장이 부득이한 사정으로 다른 곳으로 옮겼다. 실적이 좋지 않았던 P5공장 내부에선 독종으로 불리는 한 사장이 외부인을 팀장에 앉힐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한 사장은 해당 팀의 2인자였던 과장을 팀장 자리에 앉혔다. 과장을 팀장에 임명한 건 파격이었다. 먼저 내부 직원의 사기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리고 세 팀장을 한자리에 모아 “힘을 합치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P5는 2년 만에 LG디스플레이 공장 중 처음으로 수율 90%를 달성한 곳이 됐다. 당시 전무였던 한 사장은 P5의 성공을 발판으로 부사장으로 승진했고, 이후 요직을 거치며 CEO 자리까지 올랐다.
직원들의 개인사도 세심하게 챙긴다. 한 젊은 직원이 머리가 점점 빠지자 50만원짜리 직불카드를 건네며 “탈모 병원을 소개해 줄 테니 가보라”고 했던 일화는 직원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한 사장이 직접 병원에 전화해 예약을 잡아줬다고 한다.
○경청하는 리더십
직원뿐만이 아니다. 외부 이해관계자에게도 먼저 다가가 의견을 경청한다. 2013년 주주총회가 대표적 일화다. LG디스플레이 주식 2만주를 보유한 정모씨는 당시 회사가 제안한 5개 안건에 모두 반대 의사를 밝혔다. 정씨의 반대에도 안건은 모두 통과됐고 주총은 무사히 끝났다.
한 사장은 주총이 끝나자 정씨를 만나기 위해 주차장으로 뛰어갔다. “LG디스플레이에 서운한 점이 있느냐”며 악수를 청하고 고개를 숙였다. 한 사장은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할 테니 지켜봐 달라”고 말하며 정씨를 배웅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이유를 묻자 “어찌 됐든 이야기는 들어봐야 하지 않겠느냐”며 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한 LG디스플레이 직원은 “한 사장은 독단적인 결정을 내리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견해를 듣고 사업에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1등 못 하면 분해서 못 산다”
그렇다고 마냥 부드러운 사람은 아니다. 사업에 대한 욕심과 승부욕은 엄청나다는 평가다. 그는 그동안 대부분 안 되는 사업을 맡아 성공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IT사업부장을 할 땐 만년 적자였던 모니터사업을 흑자로 돌려세웠다. TN방식이 주류였던 당시 모니터 디스플레이 시장에 염가형 IPS 패널을 투입한 것도 한 사장이다. 지금은 세계 모니터의 80%가 IPS 패널을 쓰고 있다. 패널센터장 시절엔 장비 국산화율을 크게 높여 비용을 아꼈고, TV사업부장 땐 3차원(3D) 전용 패널로 경쟁사와의 싸움에서 압승을 거두기도 했다. 2013년부턴 세계 최초로 대형 OLED 양산을 시작해 투자를 늘려가고 있으며, 지난 4일엔 LG그룹 CEO 중 최초로 세계가전전시회(IFA)에서 기조연설을 맡기도 했다.
왜 그렇게 열심이냐고 묻자 한 사장은 “1등 못 하면 분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경쟁사보다 뒤처진 사업들을 보고 있는 게 분해서 참을 수 없다는 얘기다. “세계 최고가 돼야 직성이 ?객?rdquo;고도 했다. 한 사장은 지금은 대형 OLED사업 성공에 ‘올인’하고 있다. 한 사장의 술자리 구호는 항상 똑같다고 한다. “가야 할 길이라면 끝장을 보자, 제대로 될 때까지.”
■한상범 사장 프로필
△1955년 서울 출생 △1982년 연세대 요업공학과 졸업 △1982년 LG반도체 입사 △1985년 미국 스티븐스공과대 금속공학 석사 △1991년 스티븐스공과대 재료공학 박사 △2001년 LG디스플레이 생산기술센터장 △2004년 LG디스플레이 패널공장장 △2006년 LG디스플레이 패널센터장 △2007년 LG디스플레이 정보기술(IT)산업부장 △2010년 LG디스플레이 TV사업본부장 △2012년 LG디스플레이 대표(부사장) △2013년 LG디스플레이 대표(사장) △2015년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장
남윤선/정지은 기자 inklings@hankyung.com/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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